어쩌다 이른 아침에 들르면 A씨는 기자와의 대화 중에 걸려오는 애널리스트 전화를 받기도 했다. 애널리스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순 없었지만 A씨 말을 통해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난 A씨가 “장 기자, 이게 ‘퍼스트 콜’일까를 항상 의심해야 해”라고 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큰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로서 이 애널리스트가 투자 아이디어를 다른 펀드매니저에게 먼저 말하고 자신에게 나중에 알려줘 결과적으로 들러리 서게 하는 건 아닌지를 늘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어느 날 A씨는 기자를 붙잡고 스마트폰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다. “앞으로 모두가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는 세상이 될 거야. 그래서 횡단보도에서 사고도 많이 나겠지….”
스마트폰이 몰고 올 미래의 변화를 설명하는 그의 얼굴은 한껏 상기돼 있었다.
고백하자면, 기자는 A씨의 설명을 들으며 그다지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아, 네. 그렇겠군요”라고 예의상 공감을 표시하는 정도였다. 매일 증권시장 이슈를 포착해 기사를 써야 하는 ‘하루살이’ 증권 기자로선 몇 년 뒤 얘기는 한가한 말처럼 들렸다.
A씨의 스마트폰 강의는 이제 누구나 아는 현실이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처리하는 세상이다.
증권부 기자가 아니지만 A씨와는 여전히 연락하며 아주 가끔 얼굴도 본다. 증권부 기자로서 A씨를 2년 전쯤 만났다면 그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해 강의했을 것 같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지난해부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아 테슬라,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의 주가가 급등했다. 이미 A씨의 강의는 필요없는 상황이다.
일찍 투자한 사람들은 얼마나 더 수익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해하고, 아직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들어가도 괜찮을지 망설이고 있다.
한 증권사가 지난달 이런 투자자들이 참고할 만한 보고서를 내놨다. 메리츠증권은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이 올해 시장의 주도주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폰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과거 스마트폰 시장 침투율(전체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중)과 주가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기술 대중화 직전 단계인 0~10%에서 주가 측면의 성과가 가장 좋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전기차의 시장 침투율은 4% 전후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수익을 볼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이런 설명에도 전기차와 배터리의 주가 수준이 부담스럽다면 배터리 소재로 쓰이는 ‘동박’에 관심을 가져볼 수 있다. 동박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배터리에서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지난해 10월 24일자 이 글에서 동박을 생산하는 SKC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이후 SKC 주가는 60% 이상 뛰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전기차와 배터리에 비해 SKC 주가는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며 “포스코를 제외하고 소재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데 SKC는 대기업 계열사여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계속 성장하더라도 만약 동박을 대체할 기술이 나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황 연구원은 “현재 기술 로드맵상 기술 수준이 2~3단계 높아지면 동박이 필요없어질 수도 있다”며 “2035~2040년까지는 동박 수요가 꾸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배터리 그리고 동박은 ‘정해진 미래’가 보이는 종목으로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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