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설비 증설 검토 소식을 전하며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를 변수로 꼽았다. WSJ는 “이 부회장이 그동안 삼성의 모든 중요한 사업 결정을 최종적으로 승인해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삼성의 고민은 복잡한 국내외 경영 환경에 그치지 않는다. 2014년 이후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관련 절차의 최상단엔 이 부회장이 있었다. 개별 사업부의 판단을 각 사업부문 대표(CEO)와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가 조율하고 이 부회장이 최종 결정하는 식이다.
2016년 글로벌 자동차 전장(전자장치)업체 하만 인수(약 10조원), 2019년 삼성디스플레이의 QD(퀀텀닷) 디스플레이 시설 투자(13조1000억원), 2020년 경기 평택2공장 내 낸드플래시·파운드리 생산라인 구축(약 20조원) 등도 이 부회장의 최종 판단이 없었다면 실행되지 않았을 굵직한 프로젝트다.
미국 파운드리 공장 증설은 국내 투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문제로 평가된다. 10조원 넘는 투자 규모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미·중 무역분쟁 등이 엮여 있어 ‘정무적 판단’까지 요구되기 때문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미국 반도체 투자는 총수가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최적의 시기’에 ‘최고의 판단’을 내려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등으로 글로벌 경영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며 “리더십 공백은 삼성에 작지 않은 리스크”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삼성은 일단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관련 재상고를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25일 시한인 재상고를 위해선 전날까지 관련 서류를 법원에 제출해야 하지만 삼성 측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삼성 측이 재상고하더라도 이미 법리적으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은 만큼 실익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2년6개월의 징역형은 형사소송법상 재상고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양형부당’을 다투기도 어렵다. 이 부회장이 옥중 첫 메시지로 ‘준법경영’을 강조한 점도 재상고 포기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형을 조기 확정한 뒤 옥중에서 경영 현안을 보고받아 집행하는 식으로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2017년부터 1년가량 복역해 형이 확정되더라도 남은 복역기간은 약 1년6개월이다. 최근엔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또는 ‘가석방’ 여론도 확산하고 있다.
황정수/남정민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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