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톱 공매도로 미국 헤지펀드들이 초대형 손실을 본 이번 사태는 젊고 똑똑한 개인투자자 증가가 소셜미디어의 힘과 결합돼 나타났다. 과거 개인들은 헤지펀드 등 기관의 정보력과 자금력에 밀려 돈을 잃기 일쑤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칼럼을 통해 “‘게임스톱 사태’는 돈 버는 기계 월가 금융회사에 대한 분노”라고 진단했다. 개미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건 욕심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누적된 월가에 대한 분노 때문이란 것이다.
비디오게임 소매업체인 게임스톱은 잊혀진 주식이었다. 작년 8월만 해도 4달러대였다. 하지만 지난 13일 온라인 반려동물 용품업체 츄이의 공동창업자이자 행동주의 투자자인 라이언 코언이 이사진에 합류한다는 소식으로 급등하기 시작했다. 코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신의 벤처캐피털(RC벤처스)을 통해 지분 12.9%(지난해 12월 말 기준)를 사들인 뒤 “게임스톱이 모든 점포를 팔고 온라인 유통점으로 변신하면 수익성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로빈후드 투자자’로 불리는 개인이 가세했다. 주가는 20일 40달러 근처까지 급등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게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인 시트론리서치다. 시트론 측은 게임스톱을 ‘실패한 소매업체’라고 규정하고 “지금 주식을 사는 사람은 포커게임의 멍청이며 주가는 순식간에 20달러까지 폭락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개미들은 분노했다. 공매도를 일삼으며 큰돈을 벌던 월가 금융사가 또다시 자신들을 공격하자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의 ‘월스트리트베츠’라는 주식 토론방을 중심으로 뭉쳤다. 주식뿐 아니라 주식 콜옵션까지 대거 매수에 나섰다. 이 토론방에 참여한 개인들은 27일 310만 명에 달했다. 이날 하루에만 70만 명이 불어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개미는 시트론의 앤드루 레프트 최고경영자(CEO)의 ‘신상털이’에 나서고 자녀들에게 협박 문자까지 보냈다. 레프트는 결국 21일 공매도를 포기했다. 주가는 거침없이 올랐다. 22일 게임스톱 주가는 65.01달러까지 급등했다. 장 초반 144% 오른 159.19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새 월스트리트베츠 토론방에는 “1만달러를 콜옵션에 투자해 1주일 만에 100만달러를 벌었다”는 등 성과를 자랑하는 증권계좌 인증샷이 줄줄이 올라왔다.
개미들은 공매도가 많은 다른 종목들로도 눈을 돌렸다. 미국 최대 극장체인 AMC엔터테인먼트는 27일 하루 만에 301% 올라 5달러였던 주가가 19.9달러가 됐다. 익스프레스홀딩스(214%), 코스코퍼레이션(480%), 내셔널비버리지(40%) 등 기관 공매도가 많은 주식들이 줄줄이 폭등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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