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은 베이징엔 경축일(!)일지도 모른다. 지난 4년간 그렇게 무자비하게 ‘중국 후려치기’를 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대에 부응하듯 새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차이나’에 대해 한마디도 안 했다. 중국을 ‘일자리 도둑’ 국가로 몰아붙이던 전임자와 대조적이었다. 이에 베이징은 발톱을 감추고, 희망의 창문이 열렸으니 악화된 미·중 관계를 복원하자며 추파를 던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다보스 포럼 기조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를 신랄하게 질타하며 중국은 세계화에 앞장서겠다고 호언했다.
작년 11월 미국 대선 후 베이징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 ‘중국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미국인이 괴팍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아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 다행히 트럼프가 낙선했으니, 미국은 이제 정신 차리고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다분히 훈계조다. 민주당 정부가 과거처럼 친중(親中)으로 돌아서거나, 아니면 무늬만 친중인 차이나 후려치기를 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미·중 관계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단순히 백악관 주인이 바뀌었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지금의 미·중 갈등은 ‘트럼프의 전쟁’이 아니다. 미 의회까지 발 벗고 나선 ‘USA의 총력전’이다. 사사건건 각을 세우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딱 한 가지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법안들이 있다. 중국 제재 법안이다. 이미 100개가 넘는 관련 법안이 통과됐는데, 민주당 정권에선 더 심각한 갈등 요인이 잠재해 있다. 인권 문제다.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정책 아젠다는 인권이다. 신장위구르, 홍콩 관련 인권법안이 쏟아져 나오고, 당연히 중국은 내정간섭이라고 크게 반발할 것이다.
둘째, 지금 워싱턴엔 ‘이러다간 중국 경제에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미국은 마이너스 성장을 했는데, 중국은 무려 2.3% 성장했다. 당초 예상보다 5년 빠른 2028년에 중국 경제가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해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유럽의 모든 나라가 앞으로 중국 경제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경제 패권을 순순히 2등 국가에 내준 나라는 하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서방 세계가 중국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반중(反中)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퓨리서치가 중국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유럽 호주 일본 인도 등 대부분 나라가 2002년 ‘중국 좋아요’에서 2020년 ‘중국 아주 싫어요’로 변했다. 전통적 친중 국가인 영국의 경우 20년 전 65%가 중국에 호감을 가졌는데 작년엔 22%로 급락했다. 반면 불과 16%이던 비(非)호감도는 74%로 뛰었다. 영국과 호주 해군은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에 참가하고, 일본 인도는 미국과 함께 쿼드(Quad)로 군사협력을 하고 있다.
세계 핵심 국가로부터 왕따당하는 베이징이 기댈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엄청난 달러를 퍼부은 아프리카 그리고 일부 일대일로(一帶一路) 참여국뿐이다. 모두 별 도움이 안 되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세계 10위 경제국이자,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가 미·중 갈등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며칠 전 시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한국부터 흔들어보자는 것이다.
한국만 끌어들이면 베이징은 대박(!)을 치고, 워싱턴은 배신감을 느끼고 돌아설 것이며, 우리는 역사를 헛짚고 구한말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