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 '빚의 나라' 일본보다 괜찮나

입력 2021-01-28 17:43   수정 2021-01-29 00:26

연수입은 5700만원인데 지출은 1억700만원이다. 매년 노부모의 병간호에만 3600만원이 든다. 여기에 연간 대출 이자가 2400만원이다. 은행에서 끌어 쓴 돈이 10억원을 넘는다. 수입보다 많은 돈이 병원비와 대출 이자 등으로 나가니 저축이나 미래를 위한 투자는 꿈도 못 꾼다.

미래가 안 보이는 이 가계부의 주인공은 일본이다. 일본의 올해 예산은 106조6097억엔(약 1134조50404억원), 이 가운데 사회보장비와 국채 이자가 각각 35조8421억엔, 23조7599억엔에 달한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2025년부터는 의료비로만 54조9000억엔이 든다.
日, 이자 지급액이 세수 초과
지난해 일본 정부의 세금 수입은 57조4480억엔에 그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3년 만에 세수가 60조엔을 밑돈 것이다. 부족분은 또다시 국채를 찍어 메울 계획이다. 올해 말 일본의 국가 채무는 1209조엔으로 불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250%를 넘는다.

일본이 코로나19 이후 국제 경쟁에서 뒤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밑바탕엔 높은 국가 채무 비율이 자리잡고 있다. GDP의 2.5배가 넘는 부채를 짊어지고 1년 예산 중 3분의 2를 복지와 이자 지급에 쓰는 나라가 미래를 위한 통 큰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은 항상 대규모 자연재해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경제브레인인 데이비드 앳킨슨 성장전략회의 위원은 “채무가 1000조엔을 넘는 국가가 대규모 재해를 당하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올해 국회 중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인기 영합주의 정책이 속출하고 있다. 전 국민에게 1인당 10만엔씩 한 번 더 지급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작년 4월 시행한 이 정책에는 12조8000억엔이 들었다.

아소 다로 재무상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당신을 위해 당신의 자식과 손주들의 빚을 늘리자는 것이냐”며 거부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아소 재무상은 후쿠오카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그 역시 종종 인기 영합주의적 정책을 내놓는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번만큼은 나라의 곳간을 책임지는 재무상의 책무를 우선시했다.
韓 채무비율 日보다 낮다지만
한국의 올해 예산은 558조원이다. 경제 규모는 일본의 3분의 1인데 예산은 절반 수준으로 늘었다. 덩달아 나랏빚도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 채무가 올해 말 956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같은 기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36.0%에서 47.3%로 오른다.

그런데도 여당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손실보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 채무 비율이 60%를 넘으면 어떠냐고 한다. 일본을 비롯한 주요 국가보다 국가 채무 비율이 낮다는 게 그 근거 중 하나다.

하지만 일본이 막대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건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엔화를 찍어 국채를 대량 매입해 정부 국채 잔액의 44.2%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일본 국민이 두 번째로 많은 일본 국채를 사준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개인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한국이 지금처럼 나랏빚을 무턱대고 늘리면 부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제발 기우(杞憂)였으면 한다.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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