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탄핵 나선 與…'사법부 길들이기' 논란

입력 2021-01-28 21:28   수정 2021-01-29 01:22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사진)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혐의가 명백한 법관을 탄핵한다는 입장이지만 범여권을 통틀어 180석을 훌쩍 넘는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법관 탄핵을 본격화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與, 탄핵안 자유 표결 부치기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법관대표자회의 의사에 따라 헌법 위반 혐의를 받는 임 부장판사에 대한 의원들의 탄핵 소추 추진을 허용하기로 했다”며 “이탄희 의원이 임 부장판사, 이동근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했는데 당내 법률 전문가 몇 분이 이 부장판사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 이 의원이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법관 탄핵을 당론으로 추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고 의원들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임 부장판사의 재판기록을 보면 명백하게 헌법 위반 혐의가 명시돼 있다”며 “탄핵권을 국회가 갖고 있기 때문에 국회가 헌법을 위반한 법관을 탄핵하지 않는 것은 임무 방기라는 많은 의원의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개별 의원의 법관 탄핵소추안 발의를 허용하고, 표결은 2월 첫째주 본회의에서 당론 없이 자율에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3권분립 침해 등을 이유로 법관 탄핵에 반대해왔다.
의총에서 반대 의견 강했지만…
당초 민주당 지도부는 법관 탄핵에 부정적인 의사를 보여왔다. 이날 오후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김 원내대표와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 등은 2월 임시국회에서 야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법관 탄핵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 탄핵을 추진할 경우 오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외연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컸다. 법관 탄핵을 강하게 주장하는 극성 당원의 목소리에 매몰돼 주류 민심과 동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법관 탄핵 소추에 힘을 실어주며 분위기가 급작스레 반전됐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법관 탄핵을 논의하기 위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당 법률위원회의 보고를 받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 사면 발언으로 민심을 잃은 이 대표가 극성 당원을 의식한 것 아니겠느냐”며 “원내 지도부는 줄곧 난색을 보여온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당 안에서도 법관 탄핵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아 자유 표결에 맡기면 부결 가능성도 작지 않다”며 “극성 지지층에 메시지를 주면서도 야당과의 관계는 적당히 유지할 묘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 “사법부 독립 위협”
법조계는 “사법부 압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인 한 부장판사는 “사법농단이라는 게 3년 전 나온 얘기인데 그걸 느닷없이 지금 왜 꺼내겠느냐”며 “선거를 앞두고 자기편을 모으기 위해 사법부를 이용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법원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며 “여당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이 나온다고 법관을 탄핵한다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관 탄핵 시도는 헌정 사상 두 번 있었지만 모두 불발됐다. 1985년 12대 국회는 당시 유태흥 대법원장의 탄핵소추안 처리를 시도했으나 부결됐고, 2009년 18대 국회에선 광우병 촛불집회 개입 의혹과 관련해 신영철 대법관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으나 자동 폐기됐다.

김소현/남정민 기자 alp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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