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야기] 웹은 군중이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방대한 도서관

입력 2021-02-01 09:00  


1993년의 인터넷 환경은 온라인에 접속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오늘날과 같이 지속적으로 접속 가능한 광대역 통신은 한참 뒤에 등장했다. 당시의 어려운 인터넷 환경 속에서도 온라인 토론집답인 ‘유즈넷(Usenet)’은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저술가인 로버트 라이트는 1993년 9월 《뉴리퍼블릭》에 유즈넷을 소개하면서, 네트워크는 상호작용에 존재하는 모든 제약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고, 웹상에서는 인종문제도 없이 자유롭게 뒤섞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군중과 웹 콘텐츠
로버트 라이트는 유즈넷 사례를 통해 온라인이 전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온갖 지식을 하나로 모으는 전례없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인터넷 이전 시대에 조직과 제도, 절차가 지식을 집적하는 중요한 힘이었다면 인터넷 시대에는 ‘군중’이 이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앤드루 맥아피와 에릭 브린욜프슨은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를 통해 군중이란 ‘네트워크와 그에 따르는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 새로운 참여자들과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런 정의 아래서 웹은 군중이 만들어내는 도서관이다. 웹은 기존의 도서관보다 많은 정보를 보유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확장되며, 제약 없는 접근과 공유가 가능한 공간이 된다.

문제는 웹은 다양한 특성을 지닌 무수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탓에 무질서하다는 점이다. 분산되고 통제되지 않아서 표현의 자유와 혁신이 가능해지지만, 무질서한 상태가 만성화된 잡동사니 덩어리가 될 가능성도 높다. 웹 초창기에 전통적인 분류법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많았던 이유다. 해결책은 콘텐츠 자체에서 나왔다. 온라인 콘텐츠는 상당 부분 링크를 통해 다른 콘텐츠와 연결돼 있다. 즉, 특정 주제의 최고 콘텐츠는 다른 페이지와 링크가 많은 페이지인 셈이다. 인용이 많은 논문이 최고로 인정받는 것과 같다. 스탠퍼드에 재학 중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이 기술을 ‘페이지 랭크’라고 이름 붙이고 구글을 창업했다. 페이지 랭크를 통해 군중이 만든 콘텐츠가 통제되지 않지만 무질서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통제되지 않는 군중의 협력
정보의 집합은 언제나 가치가 있다. 누군가 이를 활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통적인 도서관과 달리 웹상 콘텐츠의 경우 의도적인 노력의 산물은 아니다. 다양한 군중의 아이디어를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그 결과물은 엄청난 것이 될 수 있다. 안드로이드로 대표되는 운영체계인 ‘리눅스’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리눅스 프로젝트는 1991년 8월 리누스 토발즈가 유즈넷에 자신이 개발하기 시작한 컴퓨터 운영체제 구축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에서 시작됐다. 토발즈는 윈도 프로그램을 대체할 프리웨어를 만들고자 했다. 프리웨어란 무료라는 의미와 함께 누구나 수정하고, 확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의미했다. 토발즈의 요청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소스코드를 모두에게 공개해 누구나 수정·보완할 수 있었고, 이를 위해 학력이나 경력 조건은 필요하지 않았다. 평가는 오로지 결과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장 우수한 소스코드가 프로그램에 반영됨으로써 불특정 다수의 참여는 계속해서 이뤄졌다. 누군가의 지시 없이도 리눅스 프로그램의 어느 측면에 기여할지 스스로 결정했다. 이러한 개방성과 비학력주의, 검증 가능성, 자기조직화 등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통제되지 않은 군중의 협력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 리눅스는 오늘날 축구장 크기의 데이터센터 서버에서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크고 전문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새로운 접근법 통한 협력 필요
네트워크로 연결된 오늘날 다양한 의견을 활용한 결과물의 창출이 과거 중앙집권적인 방식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사례는 많이 목격된다. 위키피디아 역시 대표적인 결과물 중 하나다. 마이클 폴라니는 폴라니의 역설로 알려진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이 안다’는 표현으로 인간 지식의 상당 부분이 암묵적인 것임을 설명했다.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폴라니의 역설을 이용해 중앙집권적 경제가 시장경제보다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음을 설명한 바 있다. 즉, 우리는 자신이 아는 것, 가진 것, 원하는 것, 가치를 두는 것을 모두 다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중앙계획으로는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모두 파악할 수 없는 탓에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로 시공간을 초월해 제약없는 정보접근과 활용이 가능한 오늘날, 경쟁우위의 원천은 다양한 의견 속에 숨어 있다. 다행히 오래되고 전통적인 기업들도 다양한 의견을 활용해 결과물을 창출하는 방식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추세다. 즉, 개방적이고, 학력에 연연하지 않으며 자기조직적인 업무를 허용하고자 한다. 권력과 권위는 과거의 경쟁에서 분명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변화된 경쟁환경에서는 개방적인 태도를 통해 얻은 통제되지 않은 의견을 한 점에 모으려는 노력이 새로운 경쟁우위를 얻는 방식임을 깨달을 시점이다.
☞ 포인트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
통제되지 않은 다양한 의견 통합이
새로운 경쟁 우위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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