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질까, 더 버틸까…장기투자자는 힘들다

입력 2021-01-29 17:17   수정 2021-01-29 23:34

아침 출근 시간 회사 주차장이 만원이다. 몇 바퀴를 돌아도 빈 자리가 없다. A씨는 할 수 없이 이중주차를 했다. 그나마 다른 사람에게 줄 피해를 최소화할 만한 자리를 골랐다. 다들 주차난을 겪고 있어 A씨의 이중주차는 납득이 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출근 시간이 지나고 자동차들이 빠져나간 뒤엔 상황이 정반대다. 듬성듬성 빈 자리가 있는데도 주차구역이 아닌 곳에 세워진 A씨의 자동차는 볼썽사납다. 누가 봐도 매너 빵점짜리 함부로 주차다.

이를 두고 ‘프레임’으로 유명한 최인철 서울대 교수는 프레임이 ‘맥락’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출근 시간 상황은 이중주차를 용인하는 맥락이다. 하지만 주차장이 한가해진 상황은 이중주차가 비난받는 맥락이다.

투자자 B씨도 맥락이 변한 통에 마음고생이 심하다. 지난해 증시가 ‘V자’ 반등할 때 바이오 종목에 투자했다. 바이오는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 중 하나로 작년 증시를 이끌었다. 누가 봐도 바이오 투자가 정답으로 여겨지는 맥락이었다. 만원 주차장에서의 이중주차보다 훨씬 더 당당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장은 꾸준히 올랐다. 주가지수로만 보면 상승 흐름은 변한 게 없다. 그러나 B씨에겐 완전히 바뀐 맥락이다. 바이오는 더 이상 주도주로 불리지 않는다. 반도체와 배터리가 주도주 자리를 꿰차고 있다.

결국 B씨는 한가한 주차장에 이중주차한 이상한 사람이 돼 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처음부터 장기투자를 생각한 게 화근이다. 바이오 종목의 성장 잠재력에 장기적으로 베팅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중간에 주가가 상당히 조정받을 때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

바이오가 주도주이던 맥락에선 주가가 오르면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주가가 내리면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바이오가 주도주에서 밀린 뒤엔 “아직도 들고 있어”라며 안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시장은 좋지만 B씨의 수익률은 엉망이 됐다. 주가지수는 잔칫집 분위기인데 본인만 물려 있는 상황이어서 더 힘들다. 하락장이라면 주변 사람들과 너스레를 떨며 위안이라도 얻을 텐데 ‘증시 불장’이 그저 ‘강 건너 불장’인 상황이라 마음고생만 한다.

흔들리는 마음을 달래보려고 투자 전문가들의 조언에도 의지해본다. “분명히 실적을 낼 종목이라고 확신해 투자했다면 수면제를 먹고 몇 년 뒤에 깨어나서 계좌를 확인하라”는 식의 조언 말이다. 그런 조언들은 스스로 ‘존버’할 수 없으면 수면제를 먹듯이 다른 힘을 빌려서라도 손절의 유혹을 이겨내라고 주문한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투자자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으려나 해서 인터넷 종목 게시판도 기웃거린다. “아직도 바닥이 아니다.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떨어지기만 입 벌리고 기다린다”는 ‘안티’들의 글로 게시판이 어지럽다.

어렵사리 ‘찬티’ 글이 눈에 들어온다.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는 것이 주식하는 사람의 숙명이다. 끝까지 존버다”라는 글이 잠깐 위로가 된다.

하지만 바로 아래 글이 다시 힘 빠지게 한다. “인질(투자자)의 목숨(투자금)을 위협하는 인질범(바이오 회사)을 거꾸로 옹호하는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진 것 아니라면 이제라도 매도하라”는 비아냥이 버티기 힘들게 한다.

유망한 종목에 장기적으로 묻어두는 투자는 교과서에나 있는 말인 듯싶다. “장기투자는 무슨, 이제라도 스윙 매매를 해야 하나 보다”라는 고민으로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코스피지수 3000 시대가 됐지만 B씨처럼 난처한 상황에 몰린 투자자가 적지 않다. 존버 장기투자든, 스윙 매매든 결국 각자의 선택이다. 바뀐 맥락에서 자유롭기는 참 어렵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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