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현대자동차는 세계 최초의 ‘플라잉카(나는 자동차)’ 공항인 영국의 도심항공모빌리티(UAM) 공항 건설에 참여한다. 앞서 현대차는 인공지능(AI) 로봇 개로 유명한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를 11억달러(약 1조23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미국 애플의 ‘애플카’ 제조 유력 후보로도 떠올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90억달러(약 10조원)를 들여 인텔의 낸드사업부문을 사들이는 ‘승부수’를 던졌다. LG전자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캐나다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손잡고 전기차 부품시장에서 위상을 높였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네이버와 힘을 합쳐 거대 ‘K컬처’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과감한 ‘합종연횡(合從連衡)’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세대 교체를 이룬 주요 대기업들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새판 짜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리더들은 잇따라 공식·비공식 회동을 이어가며 전기차와 2차전지, AI, 로봇, 5세대(5G) 이동통신 등 첨단 분야에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협업을 논의하는 등 업종과 업태의 고정관념을 뛰어넘고 있다.
창업세대 기업인들이 ‘그룹 내부’에서 자기완결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지금 3~4세대 기업인들은 최고 효율을 도모할 수 있다면 누구와도 선뜻 손잡는 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산업 간 융·복합의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경이 무의미한 글로벌 경쟁 시대를 맞아 전혀 다른 문법으로, ‘창조적 혁신’을 모색하는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기업들은 과거의 성공, 그간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지만,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암울하기만 하다. 사회 전반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는 변함이 없고, 기업인을 ‘잠재 범죄자’로 상정한 겹겹의 과잉처벌 규제에 포위돼 있다. ‘졸면 죽는다’는 글로벌 경쟁의 철칙은 한순간의 예외나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도전에 나서는 기업들을 돕기는커녕 뒷덜미를 잡고 끌어내리는 행태가 지속돼선 성장도, 일자리도 기대할 수 없다. ‘창조적 혁신’을 북돋울 법·제도를 정비하고, 시대착오적 정치 풍토와 노동관행을 개혁하지 않으면 ‘코로나 이후 선도국가’는 헛된 구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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