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신축 빌라를 계약한 직장인 정모씨(46)는 “공공재개발이 돼도 입주권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듣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해당 빌라는 정부가 공공재개발 대상지에 적용하기로 한 권리산정기준일(9월 21일) 이후 등기가 됐기 때문이다. 정씨는 “9월 전에 계약했는데도 입주권을 못 받는 현금청산대상자가 되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주택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공공재개발을 활성화하기로 하면서 해당 지역 다세대, 연립주택 등 빌라가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빌라 거래가 두 배가량 증가하는가 하면 특정 공공재개발 후보지역은 프리미엄(웃돈)이 10억원 넘게 붙은 매물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무턱대고 개발 예정지 빌라를 매입했다가는 입주권이 없는 ‘물딱지’를 살 수 있는 만큼 꼼꼼한 사전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재개발 대상지가 되면 ‘주택공급활성화지구’로 지정돼 용적률을 법정 상한치의 1.2배(3종 일반주거지역 기준 360%)까지 올려주고 분양가 상한제에서도 제외되는 혜택을 받는다. 대신 임대주택 공급 등을 통해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인허가 과정이 간소화돼 사업 속도가 빠른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1차 후보지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흑석2구역(4만5229㎡)은 한강변에 자리해 노른자위 입지로 통한다. 현재 270여 가구에서 고밀 개발을 통해 총 1310가구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준공업지역인 양평13구역(2만2411㎡)도 향후 현재 가구수(389가구)의 두 배가량인 618가구가 들어선다. 신설1구역(1만1204㎡)은 용적률을 법적상한의 120%인 300%까지 적용받아 사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1차 후보지 8곳을 통해 총 4700가구가 새로 공급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한남1구역 내 있는 한 다세대주택 매물(대지지분 33㎡)은 최근 가격이 10억원까지 상승했다. 지난해만 해도 6억원 중반대였지만 공공재개발 이슈가 불거진 뒤 가격이 4억원가량 뛰었다. 인근 M공인 관계자는 “아직 후보지로도 선정되지 않았지만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나와 있는 매물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성북1구역에서도 중형 빌라 가격이 두 배가량 뛰었다.
지난 26일 토지거래허가제로 지정된 1차 후보지 역시 과열 분위기다. 흑석2구역에는 프리미엄만 10억원이 붙은 매물이 나왔고, 다른 구역들도 수억원대 프리미엄이 형성됐다.
1차 후보지의 권리산정기준일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날이다. 그러나 3월 선정될 신규 구역은 공모 공고일(지난해 9월 21일)을 권리산정기준일로 일괄 적용할 방침이다. 지난해 9월 22일 이후 기존 단독주택을 허물고 8가구짜리 다세대주택을 새로 지었다면 8명이 아닌 단독주택 소유주 1명만이 조합원 자격이 있다.
2차 후보지의 경우 아직 구역 경계도 불분명하다. 정상 매물이라도 구역에서 벗어난 위치라면 조합원이 될 수 없다. 정부는 공공재개발지 원주민이 아닌 승계조합원들은 분양가를 일반분양가 수준으로 높여 차익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 사업이 최종 이뤄질 수 있을지 여부도 변수다. 실제 1차 선정지 가운데 상당수 사업장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흑석2구역은 “정부가 제시한 조건으로는 사업성이 낮다”며 포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용적률 450%, 최대 40층, 분양가 3.3㎡당 3200만원 등을 적용하면 공공재개발을 하지 않을 때와 비교해 큰 메리트가 없다는 주장이다. 강북5구역, 용두1-6구역 등 다른 1차 후보지에서도 공공재개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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