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자료가 발견되자 "충격적 이적행위"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러자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일제히 "북풍 공작"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야당의 이적 행위라는 비판은 논란거리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온건적 대북 정책을 기조로 하고 있습니다. 산업부가 전날 삭제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자료 관련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 뒤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한 아이디어 자료였다"고 밝혔는데 무리가 있는 설명은 아닙니다.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건넨 이동식저장장치(USB)에 원전 지원 계획이 포함됐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신경제구상이 담긴 USB는 미국 정부의 협조 아래 전달됐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USB는 미국 제재상 북한 반입 금지 물품이기 때문에 미국이 사전에 들여다 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USB에 원전 지원 계획이 담겼다고 추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탈원전을 지향하는 정부가 왜 북한에 원전 지원을 검토했는지 설득력 있는 대답이 필요합니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예산이 쓰였고,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져 국민 부담이 커졌습니다. 소관 부처가 내부적으로 단순 검토한 것이라 해도 북한에 원전 지원을 검토할 만큼 정부가 원전의 효용성을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순을 국민들에게 상세히 설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충분한 설명 없이 야당에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청와대는 "북풍 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묵과할 수 없다"며 "정부는 법적 조치를 포함해 대응하겠다"며 반발했습니다.
민주당 역시 "선거에 북풍 공작을 이용한다"며 야당에 총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 때만 되면 북풍 공작을 기획하는 보수 야당의 고질병 도졌다"며 "정부에게 이적행위를 했다고 정치공세 하는 것 자체가 공작정치이자 망국적인 색깔정치"라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야당의 의혹 제기를 '북풍 공작'이라고 맞받아치는 것은 어쩐지 어색합니다. 북풍이란 북한의 위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과거 독재정권에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거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북한에 대한 위협을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는데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청와대와 집권 여당도 아닌 소수 야당이 선거를 이기기 위해 북풍 공작을 기획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어렵습니다. 정부가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는 의혹은 야당의 기획이 아닌 문재인 정부의 산업부 공무원들이 관련 문서를 삭제한 것으로 드러난 데 따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와 민주당이 '북풍 공작'을 언급하는 것은 손쉽게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또다른 색깔론으로밖에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여야가 제기하는 낡은 색깔론이 국민의 공감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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