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에 대한 불신과 우려의 목소리는 이번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이용해 천연두 백신을 개발한 이래로 백신의 안전성에 관한 논란은 끊임없었다. 불행한 것은 이런 불신이 백신 의무화가 개인의 선택권 침해라는 정치적인 믿음, 예방접종은 창조주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 백신이 정부나 거대 기업이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식의 각종 음모론과 결합돼 과학적 근거를 배제한 백신 거부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는 항상 공중보건에 위협이 됐을 뿐이다.
최근 홍역(measles), 볼거리(mumps), 풍진(rubella)을 동시에 예방하는 MMR 백신 거부 운동 사례는 특히 악의적이고 위험하다. 영국의 앤드루 웨이크필드라는 의사가 1998년 MMR 백신이 자폐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이는 백신을 불신하던 사람들에게 백신 거부 명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탄약을 제공했다. 그 결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호주, 미국 등 몇몇 국가의 MMR 예방접종률이 급락하며 이들 국가는 문자 그대로 홍역을 치렀다. 추후에 웨이크필드의 논문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문은 철회됐고, 웨이크필드의 의사 면허도 정지됐지만 이미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뒤였다. 게다가 논문이 철회된 지금도 ‘백신이 자폐를 유발한다’는 괴담은 사라지지 않고 떠돌며 간헐적으로 홍역 유행의 주범이 되고 있다.
그런데 예방접종은 항체 자체를 몸에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 아님에도 면역체계가 질병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물질을 주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체에서는 이 물질과 싸우는 과정에서 항체를 생성한다. 기본적으로 주사를 맞는 사람의 면역체계가 주사제에 적절히 반응해 효과를 보는 방법이다. 그렇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주사 자체에 몸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주사를 맞은 뒤에도 충분한 항체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개인차를 모두 백신의 잘못으로 몰아서 그 효용을 의심한다면 인간이 전염병과 맞서 싸워서 이길 승산은 없다.
물론 백신을 맞지 않고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백신의 효용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백신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대로 백신이 대단히 효과적인 덕분에 생긴 집단면역(herd immunity) 덕분이다.
집단면역을 갖게 되면 예방주사를 맞으나 안 맞으나 아무 차이가 없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실상은 예방주사를 맞아서 면역력을 확보한 대다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보호해주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므로,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최근 코로나19에 대한 소위 K방역의 성공 여부, 백신 확보 및 보급이 정치적 쟁점이 됐다지만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백신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문제 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백신에 대한 불신의 대가는 항상 국민의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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