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이 없는 세상, 상상해보셨습니까

입력 2021-02-08 09:01  


유통은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다리가 막히면 차가 못 다니듯이, 유통이 막히면 재화와 서비스가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를 잘 오가지 못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로마로 흘러들어가는 물류와 정보의 유통이 ‘끝내준다’는 의미일 겁니다.

유통은 여러 단계를 거쳐 그 모습을 바꿔 왔습니다. 농업이 생겨나기 전에 유통은 아마도 당사자끼리 직접 만나서 물물교환하는 방식이었을 겁니다. 물고기 한 마리와 사과 두 개를 서로 맞바꾸는 방식이죠. 유통은 가장 단순한 단계였을 겁니다. 그다음 누군가 등짐에 물건을 제법 넣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면서 유통했을 겁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부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두산그룹이 보부상(고 박승직 창업자)에서 시작한 그룹이란 거 아세요?

시장이 곳곳에 자생적으로 생겼을 겁니다. 재래시장, 5일장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유통은 조금 더 달라졌습니다. 동네에 상회, 상점, 가게들이 생겼고, 종로에 화신백화점이 생겨났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 생기면서 유통은 혁명을 맞습니다. 서울과 부산이 연결됐고, 천지 사방으로 도로가 뚫리기 시작했습니다. 유통망 확충은 이곳에서 나는 농산물을 저곳으로, 저곳의 농산물과 제품을 이곳으로 빠르게 옮겼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전국 규모로 이어지면서 생활이 풍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유통은 대형 할인점, 대형마트로 진화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모바일 유통시대가 됐습니다. 출근 지하철에서 모바일 쇼핑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안방에서도 척척 합니다. 유통 진화와 휴대폰의 진화는 비슷한 듯합니다. 보부상이 1G전화라면, 재래시장은 2G폰, 가게와 상점은 3G폰, 대형마트-TV홈쇼핑은 4G폰, 모바일-인터넷 쇼핑은 5G폰쯤 될까요? 억지스런 비유는 아닙니다.

빠르고 정확한 유통망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할 거래비용을 낮춰줍니다. 우리는 생산지로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물건을 직접 사러 가야 한다면, 비용이 많이 들 것입니다. 저녁 한 끼를 먹으려면 자기 일을 미뤄놓은 채 고기, 생선, 채소를 사러 산지로 가야 할 겁니다. 중간상인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유통의 세계로 들어가 봅시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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