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진의 수술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뛰어납니다. 다만 뇌사자가 기증한 소중한 장기를 수술받을 환자에게 이식하기까지의 과정에 아직 어려움이 많습니다.”
지난달 대구와 서울을 잇는 장거리 장기이식수술에 성공한 강준규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장기이식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2019년 문을 연 은평성모병원은 지난달 네 번째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했다.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발생한 뇌사자의 심장을 적출한 뒤 서울까지 운반해 확장성 심근병으로 1년 넘게 투병하던 서민환 씨(38)에게 이식했다.
강 교수는 “먼 거리에서 기증자가 발생하면 KTX 또는 헬기밖에 운송수단이 없는데 헬기는 위험하고 KTX는 이동시간이 정해져 있다”며 “장기이식팀 의료진이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원거리 이송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 병원까지 옮기는 과정에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에 이식받은 서씨는 서울 종로소방서에서 근무하는 현직 소방관이다. 2019년 건강검진을 통해 심장 이상을 확인했다. 약물로 조절하며 생활하던 지난해 12월 심장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확장성 심근병은 심장 근육의 수축운동이 원활하지 않아 혈액이 잘 돌지 않는 질환이다.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진단을 받은 그는 인공심폐기(에크모) 치료를 받으며 이식을 기다려왔다.
기증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린 것은 지난달 13일께다. 영남대병원으로 내려간 은평성모병원 의료진은 오후 7시49분 심장을 적출한 뒤 바로 앰뷸런스에 올랐다. 뇌사자의 몸에서 나온 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술 성공률이 낮아진다. 이식 심장의 골든타임은 4시간에 불과하다.
당초 헬기로 심장을 이송하려 했지만 갑작스런 눈 예보 때문에 무산됐다. 이들의 발이 된 것은 KTX다. 하지만 기차 시간이 촉박했다. KTX가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오후 8시13분이었는데, 이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동행했던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코레일에 도움을 청했다. 코레일은 3분가량 열차를 지연 운행해 의료진이 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별도 동선을 안내해 역 밖에 대기 중인 앰뷸런스를 의료진이 빨리 탈 수 있도록 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20분. 영남대병원에서 출발한 지 2시간30분 만이다. 대기하던 강 교수팀은 바로 수술을 시작했고 다음날 오전 1시10분 이식수술을 무사히 끝냈다. 서씨는 지난 5일 퇴원했다.
강 교수는 철도공사에 각별한 고마움을 표했다. 장기기증을 통해 생명을 살린 뇌사자와 유족도 마찬가지다.
강 교수는 “장기 적출 전 묵념을 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유족들 마음에 부담을 덜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촌각을 다퉈 장기를 이송하는 의료진은 교통사고 등 각종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며 “이들을 보호하는 장치도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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