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쪽방촌 개발과 관련해서는 '재산권 침해' 논란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대책 발표 이후 거래에 대해서는 '현금청산'을 해야 한다고 못 박으면서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투자 외에 실거주를 목적으로 집을 사기에는 불확실성이 높아져서다. 반면 거래가 가능한 물건이 줄면서 새 아파트의 인기는 더 치솟고 있다.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집값을 올리는 악순환이 이번에도 반복되는 양상이다.
서울 공급의 대부분은 민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비사업(9만3000가구), 역세권(7만8000가구), 준공업지역(3000가구), 저층 주거지(1만3000가구) 등은 땅 주인이나 집주인, 세입자 등의 이해를 받아야만 사업추진이 가능하다. 정부의 장담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책 발표후 방송에 출연해 "서울 시내에서 보수적으로 잡아도 222곳이 정부가 생각하는 사업 예정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택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며 "공급쇼크 수준"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하지만 민간에 달려 있다보니 부지확보를 강제할 수는 없는데다 사업추진을 감안하면 빠른 시기에 주택이 공급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이해당사자가 동의해도 도시기본계획, 기반시설, 대지조성 등을 거쳐야 건설에 나설 수 있다. 당장 공사가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아파트의 경우 3∼4년 이후에나 공급을 기대할 수 있다. 부지 확보부터 시작한다면 7∼8년 후에나 주택이 나오게 된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불거지는 재산권 및 사유재산권 침해논란도 비껴가기 어렵다. 정부가 국내 최대 쪽방 밀집 지역인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정비사업을 예고하자, 토지 소유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후암특별계획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는 "정부가 발표한 '서울역 쪽방촌 정비사업 추진방안'에 대해 해당 지역 토지·건물주들은 결사반대한다"며 "이번 방안 발표 전 토지·건물주들과는 그 어떤 협의나 의견 수렴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 4만7000㎡에 대한 정비사업으로 쪽방 주민 모두 재입주하는 공공임대주택 1250가구, 공공분양 200가구와 민간분양주택 960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사업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사업시행자로 참여한다. 변 장관은 "공공주택특별법 상 소규모 개발 사업으로 지정됐고, 이는 주민 동의와 무관하게 공공주택을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지역에 대해서 공공기관이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이 수월하게 진행된다면, 정부가 잡고 있는 입주시기는 2026년이다. 민간분양의 경우 이보다 더 늦어져 2030년께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보통 정비사업지 주택 소유자는 기존 주택에 비례하는 새 주택 입주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번 정부 발표에 따라 지난 4일 이후 주택의 권리를 소유하게 되면 입주권 대신 감정가에 해당하는 현금으로 돌려받게 된다.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거나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빌라나 아파트를 샀다가 시세보다 현저히 저렴한 감정가로 강제 청산을 당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실수요자들이다. 빌라의 경우 실거주와 투자 등 두 가지 목적으로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재개발이 안되더라도 아파트에 비해 낮은 가격에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수요자들은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빌라로 몰리기 시작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빌라 매매거래 건수는 2776건으로 아파트(2366건) 거래량을 추월했다. 빌라 거래가 아파트를 넘어선 건 지난 11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재건축의 경우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면서 새로 매입하는 수요자들은 직접 거주를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정부가 꺼내든 '현금청산' 카드는 시장거래를 되레 틀어막으면서 새 아파트로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을 비롯해 동작구 등 새 아파트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는 대책 발표 후 매도 호가가 1억원 이상 올랐다.
국토부는 주택 공급 담당부서의 조직 개편과 기능 보강 등을 위해 조직체계도 개편한다. 공공시행자로서 사업을 추진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도 대책의 세부 사업별 전담부서를 정하고 사업별 인력보강에 나설 예정이다. LH와 SH는 앞으로 3개월간 설명회를 집중 실시한다.
현재 운영 중인 정비사업 통합지원센터의 조직과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 통합지원센터는 기존 서울 뿐만 아니라 경기와 인천, 지방 광역시에도 설치된다. LH 수도권특별본부와 광역 대도시권 지역본부의 조직과 인력도 확충한다. 서울시는 이번 대책이 조속히 이행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할 예정이다.
각종 법률개정안도 추진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과 '공공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공주법)의 개정안에는 사업 활성화를 위해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정비구역 경계 설정 제한과 부지확보 요건 강화, 도시·건축 규제완화, 세제혜택 등이 적용된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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