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버릴 책들을 보면서 문득 내가 왜 당시 이런 책들에 심취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상도 논쟁도 다 유행처럼 왔다가 지나간다. 한때는 진리의 소리같이 여겨질 때가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 완전하지 못한 사람의 생각이었고 하나의 소음이었다. 마치 옷이 유행을 타고 시간 따라 지나가는 것처럼 사상도 논쟁도 유행을 좇아 시절 따라 왔다가 지나간다. 한때는 멋있는 옷이었고 멋있는 헤어스타일이었지만, 옛 사진의 옷들과 헤어스타일을 보면 지금도 멋있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나이가 드니 물건도 짐이다. 필요한 물건이 여기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내 짐이 앉아 있다. 물건에 대한 생각도 이제는 소유의 가치보다는 필요의 가치가 더 큰 기준이 된다. 젊었을 때는 물건마다 내가 소유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자연스럽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더 이상 가지고 싶지 않게 됐다. 소유의 기쁨이 더 이상 나의 기쁨이 되지 않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들면서는 물건만 버릴 것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버릴 것이 많아지는 것 같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젊었을 때는 생각에 생각을 더해가며 잠을 설치고는 했는데 이제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법칙을 알아서인지 어떤 문제가 와도 아등바등하지 않고 그것을 내일로 던져두고 깊이 잠든다. ‘내가 손해를 보면 되지’ 하는 생각까지 더해지면 문제 앞에서도 여유가 생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무엇을 더 가지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고 싶지는 않다.
나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는 영역도 많이 없어졌다. 더 잘되는 것 같아도 나중에 더 못되는 결과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앞서가는 것 같지만 뒤에 처져 있는 경우도 많다. 이제 젊을 때와는 달리 앞으로 내가 무엇을 더 소유하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 소유로 인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살아보니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내 주변의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내 속의 번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다. 더 심플하고 더 간결한, 그러면서도 더 깊은 삶으로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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