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우리나라로"…전 세계서 쏟아지는 '러브콜'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1-02-12 11:45   수정 2021-02-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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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투자하면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주겠다."

한국 대표 기업 삼성전자에 세계 각 국 정부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자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조(兆) 단위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구애' 움직임을 본격화한 미국, 일본에 이어 최근엔 EU(유럽연합)까지 나섰다. 자동차 산업에서 시작된 '반도체 품귀' 현상 영향이 크다. '산업의 쌀', '21세기의 석유'로 불리는 반도체를 적시에 조달하지 못하면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는 것이다.
EU(유럽연합),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해야"
경제전문 통신사 블룸버그는 11일(유럽 현지시간) "EU가 10nm 이하의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EU 국가에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며 "5G(5세대) 통신, 커넥티드카, 고성능컴퓨팅(HPC) 등과 관련한 반도체에 대한 미국과 아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EU는 독일, 프랑스 주도로 최대 500억유로(약 67조원)를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FAZ)에 따르면 유럽 각 국 정부는 보조금 등을 통해 '투자액의 20~40%' 정도를 기업들에 지원할 계획이다.

현지에선 주요 유치 대상 기업으론 대만 TSMC와 함께 삼성전자가 거론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EU가 삼성전자와 TSMC의 참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재무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TSMC와 삼성전자는 가장 혁신적인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이라며 "아직까진 결정된 바가 없지만 EU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는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고 삼성전자도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았다. TSMC는 블룸버그에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 않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EU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역내 반도체 생산시설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EU엔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온, 스위스 ST마이크로 등 차량용반도체, 아날로그반도체 등에 강점을 갖고 있는 기업이 다수 있지만 생산 공장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들이 지난 20년 간 자체 생산을 줄이고 대만 TSMC, UMC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 칩 생산을 '외주' 주는 걸 선호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긴 건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가 갑자기 커진 작년말부터다. NXP, 인피니온 등은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을 늘리고자 파운드리업체에 주문을 넣었다. 하지만 TSMC나 UMC 등 파운드리업체의 생산라인은 이미 꽉 찬 상황이었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AMD 등이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서버·PC용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처리장치) 주문을 TSMC, UMC 등에 먼저 넣었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업체들은 고객사들이 원하는만큼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게 됐다. 이 결과 세계적인 자동차업체 폭스바겐, GM 등은 '감산'에 들어갔다.
미국에서도 "보조금 주고 세금 깎아주겠다"
미국 정부는 더욱 적극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덮친 반도체 부족 사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1일(미국 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공급망에서 잠재적인 병목 지대를 찾고 있는 중"이라며 "지금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업계 핵심 이해당사자들, 무역 파트너국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이 몇주 안에 핵심 물자의 공급망 문제를 포괄적으로 점검할 것을 지시하는 범정부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백악관은 밝혔다.

반도체 공급 부족 탓에 미국의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공장을 멈춰 세우는 등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이번주 시작된 북미 지역 3개 공장에서의 감산 조치를 최소 3월 중순까지로 연장했고, 한국 부평 2공장도 절반 규모만 가동 중이다.


미국 반도체 업체들도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인텔, 퀄컴, AMD 등 미국 반도체 회사 최고경영자(CEO) 21명은 "보조금이나 세액 공제 등의 형태로 반도체 생산의 인센티브를 위한 상당한 재정지원을 해달라"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서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37%에서 최근 12%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삼성전자의 해외투자 위험성도 작지 않아
삼성전자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에 최신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고 있는 상황이다. 1공장(P1)은 완공됐고 2공장(P2)엔 최첨단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3공장은 착공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4~6공장 부지도 확보해놓은 상태다. 최첨단 공장 한 기에 30조원 정도 들어가는 걸 감안할 때 삼성전자는 이미 50조원 이상을 평택에 투자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도 100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이 유력하다.

물론 해외 생산시설에 대한 필요성도 작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미중 무역분쟁 등의 여파에 따른 '자국 우선주의' 확산으로 세계 각 국은 '자국 생산시설'에 대한 혜택을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가 몰려 있는 미국과 EU에 공장을 지으면 그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요인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대만 TSMC가 최근 해외 생산시설 건설에 적극 나서면서 삼성전자도 '견제' 차원에서 움직임에 나설 필요성이 커졌다.

물밑에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약 20조원을 투자하는 대가로 미국 지방정부들에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5일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시에 약 170억달러(약 19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증설 가능성을 전하면서 향후 20년간 8억550만달러(약 9000억원)의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세금 감면을 요청하면서 향후 10년간 18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증설이 확정될 경우 착공 시점은 오는 2분기, 가동 시점은 2023년 4분기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삼성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삼성전자가 미국이나 EU에 공장을 지었을 때, 그만큼 주문이 들어올 것이란 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미국 파운드리 공장 증설과 관련해서도 미국 인텔 등의 주문이 예상보다 적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인텔은 "외부 파운드리 활용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핵심 제품인 중앙처리장치(CPU)와 관련해선 “대부분 자체 생산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 삼성이 P2에 들어설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한 파운드리 라인에 10조원을 투자하는 등 지난해부터 국내 투자를 본격화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자칫 ‘과잉 투자’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삼성전자로선 과거의 뼈아픈 경험도 있다. 2012년 12월 “39억달러(약 4조3000억원)를 들여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을 증설한다”고 발표했는데 당시 주요 고객사였던 애플이 TSMC로 외주 물량을 옮기는 바람에 곤경에 처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전자의 순현금은 104조원 규모다. "부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현금이 넘쳐나는 상황도 아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3년 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M&A 대상으로 거론되는 NXP, ST마이크로, 인피니온 등 유럽 반도체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감안할 때 적어도 30조원, 많게는 60조원 가까운 실탄이 필요하다. 이를 제외하면 반도체 시설 투자에 투입할 수 있는 지금은 5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미국, EU 같은 '슈퍼 파워'의 요청에 흔들리다보면 정작 돈을 써야할 곳에 못 쓸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한 전직 삼성전자 사장은 "반도체는 '충분한 자금'이 필수적인 산업"이라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기업은 가장 정확한 타이밍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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