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까지 기후재앙을 막지 못한다면, 이로 인한 사망률은 2100년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5배가 될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66·사진)가 16일 세계 각국에서 동시 출간되는 신간《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How to avoid a climate disaster)》(김영사, 356쪽, 1만7800원)에서 이 같이 경고했다. “지금까지 인구 10만명당 약 14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며 “하지만 지구 기온이 계속 상승한다면 2100년엔 기후변화 때문에 인구 10만명 당 73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재앙을 극복하기 위해선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어 탄소 문명에서 청정에너지 문명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 속 기후재앙 우려가 그저 허튼 소리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저자가 빌 게이츠이기 때문이다. 그는 늘 특유의 선구안과 실천력으로 인정받아 왔다.
게이츠는 자산 1290억달러(약 142조원)로 세계 3대 부호다. 1975년 MS 설립 후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황제’로 불렸고, 수차례 디지털 혁명을 예견하며 ‘IT 업계의 구루’로 군림했다. 2008년 아내와 함께 자선단체 ‘빌 앤드 멀린다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세운 후 ‘기부의 황제’로 변신하며 환경과 보건, 교육 문제 등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2015년 4월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 테드(TED)에서 “만일 향후 수십년 내 1000만명 이상을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게 출현한다면, 그것은 전쟁보다는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해 코로나19 와 같은 바이러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예견했다. 최근 코로나19 대응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4억달러(약 4420억원)를 기부했다.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은 게이츠의 3번째 책이다.《미래로 가는 길(Road Ahead)》(1995년),《빌 게이츠@생각의 속도(Business@The Speed of Thought)》(1999년)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그의 주 관심사는 정보통신(IT) 분야였다. 22년 만에 새 책을 낸 게이츠는 ‘기후변화 전도사’다. 아프리카 지역 저개발국들이 에너지 빈곤에 시달리는 모습을 목격한 후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의무가 있지만, 그 에너지는 온실가스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년 전만 해도 나는 기후변화에 대해 책을 쓰기는커녕 공개 석상에서 강의를 할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지난 10년간 기후, 에너지, 농업, 해양과 해수면, 빙하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만나면서 치열하게 공부했다”고 밝혔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그린 프리미엄’과 ‘510억t’이다. 그린 프리미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방식에 추가적으로 드는 비용을 뜻한다. 화석연료로 만드는 에너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청정에너지를 싸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게 기후변화 대응 전략의 핵심이다. 510억t은 세계 온실가스의 연평균 배출량이다. 제조업이 31%로 가장 많다. 전력 생산이 27%, 동물 사육·식물 재배가 19%, 교통·운송 16%, 냉·난방 7%다. 그린 프리미엄을 최소화해 청정에너지 생산을 늘리면서 2050년엔 온실가스 배출을 510억t에서 0t으로 만들어야 인류가 지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우선 선진국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게이츠는 “‘2030년까지 어느 정도 배출량을 감축하고, 2050년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식의 목표는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까지 배출량 감축’은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을 위한 중간 단계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탄화력발전소 대신 탄소포집 장치가 설치된 가스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2050년에도 발전소는 여전히 운영될 것이다. 다시 말해 ‘2030년 감축’은 달성할지 몰라도 ‘2050년 제로’란 목표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에선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한 3가지 도구로 기술, 정책, 시장을 꼽는다. 혁신 공급의 주체는 기업이고, 혁신 수요의 주체는 정부라 본다. 정부가 적절한 유인책으로 기업이 혁신을 많이 만들어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이츠는 “환경 관련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처벌보다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탄소 집약적인 제품의 가격을 서서히 올림으로써, 정부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보다 바람직한 의사 결정을 하도록 유도하고 그린 프리미엄을 낮출 수 있는 혁신을 권장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이 대립 관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게이츠는 “청정에너지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가 코로나19로부터 경제를 구하고 기후재앙도 피할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기적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제로를 달성하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는 정책을 도입한다면 청정에너지 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제공된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과 탄소제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게 게이츠의 설명이다.
책의 말미에선 환경 문제가 결코 고담준론이 아니라고 말한다. 게이츠는 “기후변화와 같이 거대한 문제 앞에서 개인은 쉽게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며 “정치인이나 자선사업가가 아니어도 각 개인들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그리고 고용주 또는 직장인으로서 사회 곳곳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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