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인사청문회 유용론' 나오려면

입력 2021-02-15 17:53   수정 2021-02-16 00:09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2월 국회법 개정과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 제정으로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후보자로 확대됐고, 2005년에는 국무위원까지 청문회 대상을 넓혔다. 요약하면 시작은 김대중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고, 확대는 정권은 잃었으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주도권을 쥔 한나라당의 국회 권한 강화 전략과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개혁 의지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10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적격 의견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오후엔 장관 임명이 이뤄졌다. 오전 국회 통과, 오후 청와대 임명의 순서로 보면 황희 후보자의 월 60만원 생활비, 본회의 기간 스페인 여행, 전문성 부족 등 적격성 논란과 야당의 반대는 임명 재고 사유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황희 장관은 야당의 동의를 받지 못한 채 임명된 문재인 정부 29번째 장관급 인사가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4년 만에 야당 동의 없이 장관을 임명한 횟수가 노무현 정부 3회, 이명박 정부 17회, 박근혜 정부 10회의 전체 합과 비슷해졌다.

문재인 정부 초기만 해도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고,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지만 최근엔 사퇴도, 철회도 없었다. 더구나 21대 국회 들어서는 180석의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힘으로 인사청문회 검증을 스스로 무력화했다. ‘내정자 감싸기’는 더욱 심해졌고, 여당의 단독 보고서 채택, 청와대 바로 임명이 ‘정형화’됐다. 국민의힘은 인사청문회 무용론으로 반격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이 청문회를 통해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했던 새누리당을 돌이켜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기본 취지는 고위공직자 임명이 정치적 충성도, 지연, 학연에 입각해 이뤄지는 정실인사, 편중인사를 극복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고위공직자 임명은 바람직하지 않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로 위임된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인치(人治)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남용해 권위주의로의 퇴보가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라는 정치개혁 측면에서 볼 때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여당의 견제 포기와 야당의 견제 실패가 가져온 해악은 크다.

가장 큰 해악은 ‘국민 허탈감’이다. 국민 정서와 차이가 있는 장관 후보자들이 청문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임명되는 현실에 국민은 절망한다. 오죽했으면 최영미 시인이 “이제 분노할 힘도 없다”며 “이 정권에서 출세하려면 부패와 타락이 필수”라고 조롱했을까 싶다. 국회의 대정부 견제 약화를 가져온 것도 큰 문제다.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법을 제정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데 스스로 존재 이유를 포기하는 길로 가고 있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에 대한 해답은 청와대가 스스로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라는 정치개혁 목표에 동참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흠결에도 불구하고 장관으로 임명해준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 지나치면 ‘국민을 위한 국정 수행’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행정 집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는 국회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관습을 자제해야 한다. 입법부 구성원이 대통령의 장관 낙점을 기다리는 모습은 국회의 행정부 종속을 가져오고 삼권분립에도 어긋난다.

국회는 청문회 제도를 바꿔야 한다.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정파적 다툼의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국회 자체 인사 원칙을 세워 청와대의 인물 검증을 재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청문회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대신 청와대가 고위직 선발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업무수행 능력과 사적 윤리 영역의 검증을 분리해야 한다. ‘인사청문회 이원화’로 공적 자질 검증은 인사청문회를 공개하지만, 사적인 부분은 비공개로 하는 방식이다. 자질과 능력은 검증하되, 사생활은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하자는 취지다.

정파성을 배제한 국회의 인사청문회 검증으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사용을 제어하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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