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만으로도 너무하다 싶었는데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나오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국내 굴지의 기업인들이 "한국에서 기업 경영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는 호소를 쏟아냈다. 답답함을 토로하느라 회의 시간은 당초 계획의 두 배로 늘어났다. 17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회의 얘기다. 회장단 회의는 1시간 동안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날 모인 14명의 기업인(경총 회장 및 상근부회장 제외)들은 한 목소리로 기업 경영환경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말 시작된 정부여당의 반기업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한 기업인은 "경영자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며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무조건 처벌하겠다는 법(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떻게 국회를 통과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다른 기업인은 "손경식 경총 회장을 비롯해 경제단체장들이 그렇게나 반대했는데 전혀 반영이 안돼 놀랐다"며 "이 법안들이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오는 7월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한 노동조합법이 시행되면 정치파업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도 있었다.
회장단 회의 참석자들의 걱정은 '기업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이어졌다. 정치권이 기업들이 한 목소리로 반대하는 법안을 잇따라 처리한 배경에는 '기업을 막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지적이다. 한 참석자는 "기업인을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는 콘텐츠가 난무하고, 사회 분위기 속에 반기업 정서가 너무 강하다"며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지 못하면 새로운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경총 회장단은 이날 차기 상근부회장 선출에 대한 논의도 했다. 김용근 부회장이 최근 "정부여당이 반기업법안을 강행처리하는 데 무력감을 느꼈다"며 사퇴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회장단은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을 차기 상근부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하기로 합의했다. 경총은 오는 24일 총회를 열고 이 원장을 부회장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회장단은 이날 "어려운 여건 속에서 김 부회장이 최선을 다한 것을 알고 있다"며 박수로 그를 환송했다.
이날 회의에는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김창범 한화솔루션 부회장, 동현수 두산 부회장,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조규옥 전방 회장,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 등이 참석했다.
도병욱/김일규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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