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기술 선진국들은 연구소와 대학에서 이뤄지던 연구와 교육을 기업 활동으로 이어가면서 어려운 양자기술에 도전하고 있다. 2019년 구글이 초전도 양자컴퓨터로 선보인 ‘양자 우위(퀀텀 수프리머시)’와 함께 얼마 전 중국이 개발한 광(光)양자컴퓨터로 양자기술 전쟁이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디지털 산업에서 거둔 성공을 양자기술로 이어가는 데 한참 뒤져 있다. 재작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노력으로 양자정보과학에 대한 연구 지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그나마 다행이다.
필자는 1990년대 후반에 근무하던 대기업 연구소에서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기술의 연구를 제안했지만 “양자가 무엇이냐”는 이해 부족에 막혔다. 2000년대 초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진행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던 양자암호 과제는 부처 통폐합으로 인한 예산 부족을 이유로 막을 내렸다. 청와대에서 나오는 정책과제 우선순위에 양자기술이 든 걸 보고 순진하게 믿었던 적도 있다.
장밋빛 전망의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가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리라는 보장도 없고, 양자컴퓨터가 디지털컴퓨터를 대체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한편, 디지털로는 불가능한 것 중 어떤 것은 양자기술로 가능하겠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쓸모 있을지에 대한 판단은 연구자나 학자의 몫이 아니라 기업의 몫이다. 구글 등 여러 기업이 여태까지 선보인 양자컴퓨터 기술이 정말 쓸모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분분하다.
양자기술에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자, 국내에서도 양자기술에 대한 관심을 넘어 투자 기회를 엿보거나 실제 투자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국내외에서 양자정보과학을 전공한 박사학위자를 기업과 연구소들이 채용하고 있어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국내 기업과 연구소의 양자기술 진입과 투자를 돕기 위한 포럼을 구성하자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양자컴퓨터나 양자통신, 양자센서와 같은 기술이 ‘쓸모 있게’ 실현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니 포럼 구성이나 섣부른 투자에 대한 의구심과 경계심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기술복덕방 역할을 할 포럼이 필요해 보인다.
양자정보과학이 태동하던 1990년대에 비해, 양자기술은 이제 엄청나게 다양해지면서 난도가 높아지고 경쟁까지 심해져 세계적인 기술 추이를 따라잡는 것은 물론이고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정부 예산 지원의 창구로서가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디지털 스마트와 함께 퀀텀 스마트해질 수 있게 도와줄 포럼의 역할이 기대된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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