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베뉴'는 CES 주최기관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올해 선보인 온라인 가상전시 플랫폼이다. 지난해 20대 1의 경쟁을 뚫고 CES의 기술 파트너로 선정된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디지털로 전환해 열린 CES 2021은 이달 15일까지 한 달간 디지털 플랫폼을 연장 운영해왔다. CES 2021의 공식적인 행사기간은 지난 1월 11일부터 14일까지였다.
올해 CES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시장이 '올스톱'된 상황에서 "새 이정표를 남겼다"는 평가에, "행사만 살고 정작 중요한 비즈니스 성과는 사라졌다"는 냉혹한 평가가 나온다. 일부에선 주최기관인 CTA만 이득을 보고 기업과 바이어는 돈만 쓴 전형적인 '먹튀' 행사라는 비판도 쏟아진다.
○출품기업 '반토막'났지만 "그래도 남는 장사"
올해 CES에는 48개국 1943개사가 참여했다. 지난해 4419개사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행사에 불참했다. 안방 행사임에도 미국 기업은 전년 대비 70%가 줄어 581개에 그쳤다. 미·중 무역갈등 여파로 전체 출품업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중국에선 전년 대비 85% 준 202개사만 참여했다. 2020년 390개사가 참여했던 한국도 올해는 출품기업이 341개로 줄었다.
출품기업 감소는 충분히 예견된 부분이다. "올해 CES가 디지털 이벤트의 새 지평을 열어 그 자체로 혁신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던 CTA조차도 시장 반응과 결과에 대해선 장담하지 못했다. CTA가 올해 출품기업이 내는 참가비를 이전의 절반 수준인 1500~2만5000달러(약 166만~2760만원)로 내려 문턱을 낮춘 것도 이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CTA의 올해 출품기업 유치 목표는 1000개 안팎 수준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출품기업은 지난해의 절반 아래로 줄었지만, 목표보다는 2배 이상 높은 성과를 얻은 셈이다. "주최기관인 CTA 입장에선 올해 CES가 전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바이어 20% 감소 "유료정책에 '확장효과' 사라져"
행사 성과와 만족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바이어 참여도 줄었다. CTA는 올해 행사에 전 세계에서 15만 명이 넘는 바이어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디지털 전환으로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하는 물리적 이동의 부담이 없어진 만큼 더 많은 바이어가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167개국 8만746명. 2020년 관람객 10만798명보다 오히려 20%가 줄었다. 목표치로 내새운 15만 명에는 절반 밖에 미치지 못했다. 이전보다 참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해외 바이어는 2020년(3만4165명) 대비 9% 늘어 3만7144명에 그쳤다. CTA는 "공식일정(1월11~14일) 중 버추얼 베뉴에서 총 100만 건 이상의 거래상담이 진행됐다"고 밝혔지만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계약성과 등 세부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기대에 못미친 바이어 참여는 CTA가 고수한 '유료 등록제'가 원인이다. 오프라인에 비해 현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게다가 성과를 확신할 수 없는 디지털 행사에 100달러(약 11만원)가 넘는 등록비가 바이어 참여를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여기에 CTA 측은 보안을 이유로 개막 직전까지 버추얼 베뉴에서 어떤 식으로 기업과 제품 정보를 보여줄 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한 글로벌 IT회사 소속 임원은 "버추얼 베뉴에 올라온 참여기업 정보들은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는 뻔한 정보가 대부분"이라며 "유료로 진행하던 콘퍼러스도 유튜브,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무료로 볼 수 있어 등록비를 낸 의미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올해 CES 바이어 등록비는 1인당 149달러(약 16만5000원)였다. 지난해 200~300달러보다 가격은 싸졌지만 현지 언론에선 행사 전부터 "가격이 과연 합리적인가"를 두고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해왔다. 8만 명이 넘는 바이어가 참여한 올해 CTA가 벌어들인 등록비 수입은 최대 1200만 달러(약 133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브리드·콘펙스 행사' 성장 가능성 제시
그래도 올해 CES에 대해선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오프라인 중심으로 이어오던 산업전시회의 디지털 전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 때문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CES가 과감한 디지털 전환을 택하면서 주최자는 물론 출품기업, 바이어가 새로운 온라인 기반의 비즈니스 이벤트를 경험하는 학습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기업의 콘퍼런스·세미나 등 컨벤션 요소를 활용한 마케팅이 늘면서 전시와 컨벤션을 결합한 '콘펙스(ConfEx)'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보여줬다. 행사 주최자 입장에선 참가비와 등록비 등 기존 수익모델에 더해 새로운 수익원 확보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코엑스 관계자는 "올해 CES는 디지털 행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 방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기존 오프라인 행사에서 디지털 요소를 기업과 바이어 참여를 늘리는 확장도구로 어떻게 활용할 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CTA는 1년 뒤 열리는 CES 2022를 종전처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와 샌즈엑스포(Sands Expo) 전시장에서 연다는 계획이다. 최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행사일정은 내년 1월 5일부터 8일까지다. CTA는 내년 일정과 함께 밝힌 2023년 2024년 일정도 발표했다. 2023년은 1월 5일부터 8일까지, 2024년 1월 9일부터 12일까지다.
게리 샤피로 CTA 회장은 "올해 디지털 행사 개최 경험과 운영 노하우를 활용해 2022년 CES는 행사 규모와 기능 등에서 이전보다 더 확장된 형태의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행사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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