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 재정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위기의 치료제이자 백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민간 경제가 마비된 상태에서 정부가 전방위적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였다. 대통령의 지시는 전례 없는 재정 확대로 이어졌다. 정부는 1961년 이후 59년 만에 한 해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총 67조원에 이르는 규모였다. 여기에는 사상 초유의 전 국민 현금 지원 사업도 포함됐다. 세금으로 만드는 재정일자리는 전년보다 70만 개 많은 154만 개였다.
재정뿐만이 아니다. 소상공인·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도 100조원 넘게 이뤄졌다. 한국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기업 회사채 등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퍼부은 재정·금융 지원은 31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1917조원의 16%에 이르는 수준이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 역할이 확대되는 것은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이 지난해 코로나19 대응에 투입한 재정·유동성 지원 규모는 GDP 대비 16.7%에 이르렀다. 일본(44.0%), 이탈리아(42.3%), 독일(38.9%), 영국(32.4%) 등은 이 비율이 30%를 넘었다. 미국은 19.2%였다.
일본은 작년 4월 코로나19로 소득이 감소한 가구에 대한 현금 지원을 포함한 긴급 경제 대책에 39조5000억엔(약 414조원)을 퍼부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지난해 4월 1000억유로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자 독일도 같은 해 6월 1300억유로의 대책을 내놨다. 미국 정부 역시 지난해 코로나19 대응에 네 차례에 걸쳐 3조7000억달러(약 4094조원)의 재정을 풀었다. 여기에 조 바이든 새 정부는 경기 부양에 1조9000억달러를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한국은 IMF 기준 GDP 대비 코로나19 정부 지원 규모가 13.6%였다. G20 국가 가운데 딱 중간인 10위다.
세계 주요국 정부는 이런 지적을 감안해 올해부터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다. IMF에 따르면 G20 국가의 작년 일반정부부채비율은 평균 15.6%포인트 뛰었다. 하지만 올해 증가폭은 1.8%포인트에 그칠 전망이다. 재정 확대 속도를 늦추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공급 등으로 세계 신규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점도 반영됐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딴판이다. 올해도 확장 재정을 고수한 탓에 본예산 기준 일반정부부채비율이 3.8%포인트 늘어난다. G20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여기에 당정은 4월 재·보궐 선거 전에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포함된 추가경정예산도 편성하기로 했다. 규모는 15조~30조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는 고스란히 나랏빚 증가로 이어진다.
올해가 끝이 아니다. 정부는 작년 9월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22~2024년 GDP 대비 재정 적자를 -5.6~-5.9%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작년(-6.1%)과 비슷한 규모다. 확장 재정 정책과 큰 정부를 일상화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그런 차원에서 ‘한국판 뉴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각광받는 디지털 경제와 친환경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업마저도 정부 주도의 재정 확대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작년 7월 2021~2025년 한국판 뉴딜 사업에 국가 재정 163조원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정작 디지털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비대면 의료산업이나 빅데이터산업 규제를 개선하겠다는 얘기는 없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방향은 맞으나 방법론은 문제가 있다”며 “신산업 진입 장벽은 그대로 둔 채 재정만 대거 투입해서는 ‘뉴딜’이란 이름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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