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1조달러(약 1104조원)을 넘자 미 중앙은행(Fed, 연방준비제도)가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전문가들은 이를 '하방 압력'으로 해석하고 있는데요, 미 정부가 달러화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비트코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미 CNBC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18일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매우 투기적인 자산"이라며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기관을 규제하고 책임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앞서 옐런 장관은 지난달에도 "많은 가상화폐가 주로 불법 금융에 사용되는 것으로 안다"며 "그런 사용을 축소하고 돈세탁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미 현지시간으로 지난 19일 비트코인 시총이 1조달러를 눈앞에 두자 곧바로 미 재무장관의 '경고'가 이어진 것입니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에 경고를 보낸 정부 당국의 인물은 옐런뿐만이 아닙니다. 19일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연방은행 총재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디지털 화폐가 통용된다면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쓰는 이유가 지하경제 말고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앙은행들이 스스로 대안적인 암호화폐를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이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초기 가상자산 비관론자들이 주로 내세웠던 "비트코인이 지하경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로젠그렌 총재가 지지한 것입니다.
비트코인은 지난 19일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개별 암호화폐가 생긴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국내 주식시장 시총 1위 삼성전자(약 491조원)의 2배를 넘는 것이며, 미 나스닥시장에 상장된 전기차 업체 테슬라(약 820조원)도 뛰어넘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의 최근 급등세는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하나둘씩 가상자산 투자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선 최근 테슬라가 약 15억달러(1조65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입해 보유한다는 공시를 발표했습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전날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법정 화폐의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일 때 단지 바보만이 (비트코인 등)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그는 "비트코인 보유는 현금 보유보다는 덜 멍청한 행동이고, 비트코인은 화폐와 거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미 자동차 제조사 제네럴 모터스(GM)는 서비스 및 차량 구매 비용 결제 수단으로 가상자산을 채택할 지 검토하는 중이라고 했고, 미 뉴욕멜론은행은 향후 비트코인 취급 업무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가상자산 결제를 도입한 세계 최대 온라인 결제기업 페이팔도 최근 급성장하는 가상자산 시장을 기회로 활용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내재 가치가 없다며 비트코인을 비판해왔던 빌 게이츠 역시 최근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9일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게이츠는 "나는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비트코인에 회의적 관점을 갖고 있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게이츠가 비트코인을 맹비난하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것과는 대조적인 것입니다. 그는 "돈을 디지털화하고 거래 비용을 낮추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빌&멜린다 재단이 개발도상국에서 하고 있는 일이 돈의 디지털화와 거래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정적 전망을 내비치고 있는 인물도 있는데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측하고 주택 버블 붕괴에 베팅을 해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인 마이클 버리입니다.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요. 버리는 전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라"고 경고하며 "인플레이션 위기 상황에 미국 정부가 달러화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비트코인과 금을 짓누르려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버리는 "1920년대 독일은 전쟁 부채로부터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마르크화 발행을 했다"며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달러화를 찍어내고 있는 현재의 미국 정부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도 여전히 비트코인 투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가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50명을 포함한 77명의 재무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4%는 비트코인 투자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습니다. 투자 의사가 있다고 답변한 비중은 16%에 그쳤으며, 연내 투자 의향을 밝힌 응답은 5%에 불과했습니다. 가트너의 리서치 책임자인 알렉산더 반트는 "재무를 담당하는 임원들로선 투기적인 모험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자산으로서 비트코인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쟁점이 많은 만큼 빠른 투자 확산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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