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족 위치 공유해요~" 일본서 뜨는 '민폐이웃 지도'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1-02-21 13:31   수정 2021-02-21 13:43


"거의 매일 아이들이 큰 소리로 공놀이를 해서 엄청 시끄럽습니다."
"보호자들의 잡담이 아이들보다 더 시끄러울 때도 있어요. 주의를 줘도 무시합니다."

'진상 이웃'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 '도로족(道路族) 맵'이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놀 공간을 잃어버린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하는 어른들의 갈등이 커지면서 생겨난 사회현상이다.

도로족은 노상에서 큰 소리로 뛰어노는 아이들과 이를 방치하는 보호자를 일컫는 신조어다. 공원이나 놀이터가 아니라 주택가에서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민폐 이웃을 가리킨다.

도로족맵은 2016년 처음 만들어졌지만 작년 3월부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공립학교가 일제히 휴교하고, 긴급사태선언으로 공원이 폐쇄되면서다.

2016년 사이트를 개설하고 1년 간 600건에 불과했던 등록건수가 작년 3월 3000건을 넘어섰다. 5월 4000건, 6월 5000건 등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할 때는 매월 1000건씩 진상이웃에 대한 '진정'이 들어왔다. 2021년 2월 현재 등록건수는 6000건을 넘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지도의 등록 포인트를 클릭하면 해당 지역 도로족에 대한 정보가 뜬다. 도쿄 미나토구 니시아자부 지역의 등록 포인트를 클릭하면 "시끄러운 도로족-경찰에 신고해도 '예전부터 존재하던 마을의 문화'라며 전혀 반성하지 않는 도로족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뜬다. 해당 지역으로 이사를 가려는 사용자가 참고할 수 있다.

피해를 본 사람이 정해진 양식에 맞게 피해 내용을 작성해서 보내면 사이트 관리자가 확인을 거쳐 등록한다.

도로족 맵을 처음 만든 사람은 12년째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다. 그 자신이 도로족 때문에 이사를 해야만 했던 피해자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아이들이 에어컨 실외기에 기어오르거나, 집 벽을 골대 삼아 축구 슈팅 연습을 했다. 돌을 던져 차에 흠집을 내거나, 담 넘어 배드민턴 셔틀콕을 집어 간다며 화분을 깨뜨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스트레스로 일을 못할 지경이 되자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기도 하고, 보호자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거의 매일 차에 침을 뱉거나 죽은 쥐를 현관에 놓아두기도 했다.

그는 경제주간지 동양경제에 "온라인 상에서 나 같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도로족이 있는 곳에서는 두 번 다시 살고 싶지 않아서 정보 공유 차원에서 사이트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본 법상 노상에서의 놀이는 불법이다. 도로교통법 76조4항3호는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서 공놀이와 롤러스케이트, 또는 비슷한 행위를 금지한다'고 정하고 있다. 위반하면 범칙금 5만엔(약 52만원)을 부과받을 수 있다.

14조3항은 '교통량이 많은 도로 또는 철로 혹은 그 주변에서 아동을 놀게 하거나 보호자 없이 아동이 걸어다니게 해서는 안된다'며 보호자의 책임도 묻고 있다.



사이트 운영자는 등록신청서 가운데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정보를 걸러내고 매일 10건에서 많게는 100건의 정보를 게재한다. 등록한 지 3년 동안 방치된 곳이나 문제가 해결된 지점은 삭제한다.

등록자와 도로족으로 지명된 거주자의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 서로의 주장을 동시에 게재해 "단순한 비방사이트가 되지 않도록" 신경쓰고 있다. 도로족 맵 홈페이지는 "아이들이 밖에서 뛰노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원 등 놀 수 있는 장소에서 마음껏 놀게 해주세요"라고 안내하고 있다.

도로족 사이트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애들이 뛰어노는 걸 가지고 지도까지 만들다니 너무 각박하다'는 것이다. 기타오리 미쓰타카 나고야 긴조학원대학 교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폐 끼치는 행위의 정의도 달라진다"며 "놀 장소가 마땅치 않아 생기는 문제인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이 사이트를 도로행정 수요를 파악하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트 운용자도 "가해자가 '너그럽지 못하다'는 무적의 어휘를 써서 피해자를 몰아붙이는 것은 '당신 사정은 모르겠고 그저 무조건 참으라는 것'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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