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배당 무산?…금호석화, 힘빠진 '조카의 난'

입력 2021-02-21 17:58   수정 2021-02-22 00:47

‘조카의 난’으로 불리는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 1라운드가 의외로 싱겁게 끝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대 주주인 박철완 상무가 숙부 박찬구 회장을 상대로 제안한 내용에 법적 하자가 발견되면서다. 박 상무가 자기편에 설 기관투자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카드로 내놓은 ‘고배당’ 제안이 정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경영권 확보를 위한 시도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상무 측은 “수정 제안을 할 것”이라며 ‘꺼진 불’이 아니다고 맞서고 있다.

주주명부 열람 가처분은 인용
21일 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다음달 정기주총에서 박 상무가 제안한 현금 배당안을 안건으로 올리지 않는 것을 검토 중이다. 박 상무 제안이 회사 정관상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관에 따르면 보통주와 우선주 간 차등 가능한 현금 배당액은 액면가(5000원)의 1%인 50원이다. 박 상무가 보통주 현금 배당액으로 제시한 것은 주당 1만1000원이다. 작년 배당액(1500원)의 7배 수준이다. 이 기준으로 우선주는 주당 1만1050원을 제시했어야 한다. 하지만 박 상무가 제안한 것은 1만1100원으로 액면가의 2%인 100원을 차등했다. 금호석화 측은 “배당률 산정에 명백한 오류가 있어 주주제안 안건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같은 오류는 지난 19일 박 상무 측이 회사를 상대로 한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 심문 과정에서 드러났다. 회사 측이 “박 상무의 배당안에 착오가 있다”고 하자, 박 상무 측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내용증명 확인 후 주주명부 제공을 협의하라”며 심문을 마감했다.

업계에선 박 상무 측이 뒤늦게 제안 내용을 바꾼다 해도 주총 안건 상정은 어렵다고 본다. 주총 개최 6주 전까지 주주제안을 해야 하는데, 이미 기한을 넘겼기 때문이다. 주총은 다음달 26일 열릴 예정이다. 배당안은 한 개 안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우선주 배당안이 성립되지 않으면 보통주 배당안도 자동 폐기되는지 회사 측은 들여다보고 있다.
고배당 가능 여부에 국민연금 변수 좌우
고배당 요구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시 공격자 측이 쓰는 전략이다. 박 상무도 지난달 낸 주주제안에서 이사회에 자신과 자신이 지명한 후보를 넣어달라는 요구와 함께 파격적으로 배당을 늘리는 안을 들고나왔다. 다른 기관투자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불리한 표 대결 판세를 바꾸기 위해서다.

금호석유화학은 작년 742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년 영업이익(3653억원)의 두 배를 넘겼다. 작년에 번 돈과 그동안 쌓인 현금을 주주들에게 돌려달라는 주장은 기존 주주들에게 매력적이다. 국민연금이 특히 그렇다. 지분이 8.16%에 달해 대주주를 제외하고 가장 많다. 박 상무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배당으로 약 273억원을 손에 쥐게 된다. 지분 10%를 보유한 박 상무가 국민연금 표를 받으면 18.16%로 박 회장 측(14.86%)을 넘어선다.

하지만 박 상무의 파격 배당안이 주총에서 상정조차 안 된다면 국민연금뿐 아니라 다른 기관들도 박 상무를 지지할 명분이 사라진다. 박 상무로선 배당안을 반드시 안건에 올려야 하고, 박 회장은 무산시켜야 한다. 박 상무 측 입장을 대변하는 KL파트너스는 “주총 소집 공고 후 입장을 정리해 밝히겠다”고 했다.

박 상무는 2002년 타계한 박정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2009년 숙부인 박삼구·박찬구 회장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 당시 박삼구 회장 편에 섰다가 이후 관계가 내내 좋지 않았다. 2010년 “박 회장이 독단적으로 경영한다”며 채권단에 서한을 보냈을 정도다. 2019년 주총에선 박 회장의 사내이사 임기 연장 안에 ‘기권’ 표를 던지기도 했다.

작년 임원인사에서 박 회장의 아들 준경씨가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자 불만이 극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촌 사이인 박 상무와 박 전무는 1978년생으로 동갑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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