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수요예측 오류는 종종 있는 일인데, 왜 유독 반도체산업은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반도체 공급사로서는 차량용 반도체가 타 제품에 비해 그리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스마트폰, PC, 서버 같은 제품에 비해 판매량이 적어 매출 기여도가 낮고, 자동차 제조사의 과도한 원가 절감 요구로 수익성도 낮다. 구체적으로 차량용 반도체는 8인치 웨이퍼로 생산하지만 여기서는 TV 및 생활가전에 밀리고, 12인치 웨이퍼를 쓰는 곳은 고부가가치 제품인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에 밀려 설 땅이 마땅치 않다. 기술적 품질 요구 수준도 매우 까다롭다. 자동차전자부품협회(AEC) 신뢰성 기준에 따르면 최소 3등급 이하(등급 3, 2, 1, 0으로, 장착 위치에 따라 최저 영하 40도에서 최고 85도, 105도, 125도, 150도로 구분)의 외부 환경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실내용 생활가전의 요구 조건은 0~40도다.
결국 공급업체로서는 매출이 적고 수익성은 낮은데 품질 요구 수준은 높은 차량용 반도체의 우선순위를 높게 둘 이유가 없다. 부족 사태를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급가를 높여 매력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만 TSMC 같은 반도체 전문 생산업체(파운드리사)는 15% 이상의 단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 가격이 10% 인상되면 자동차사 영업이익이 1% 정도 줄어든다고 하니, 자동차업체에는 뼈아픈 결과인 것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런 차량용 반도체 공급 이슈가 자동차산업의 전반적인 추세, 즉 CASE(통신연결, 자율주행, 공유·서비스, 전동)화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참고로 현재 고급 승용차에는 200~300개 반도체가 쓰이는데,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 전기차에는 2000개 이상으로 급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세대 자동차용 반도체에 대한 근원적 대책이 절실하다.
차량용 반도체는 스마트폰, PC 등과 달리 상대적으로 ‘소량 다품종’ 제품이며 품질 및 신뢰성 요구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생산 공정 준비가 필요하다. 최근 품귀 대란을 초래한 차량용 마이크로 컨트롤러(MCU)만 보더라도 생산 준비 기간이 최소 6개월은 소요된다고 하는데, 향후 자율주행용이나 전기차용 고부가가치 시스템 반도체를 준비하는 데는 최소 1년이 필요하다.
자동차산업의 미래는 CASE화 요구에 따른 고부가가치 시스템 반도체를 누가 제대로 준비하는가에 달려 있다. 5세대(5G)·6G 통신용 반도체, 자율주행용도의 신경망처리장치(NPU) 및 카메라용 이미지센서, 전기차용 전력반도체 등이 핵심 반도체로 자리잡을 것이고, 반도체에 안정적 전력을 공급하는 수동소자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수요도 동반 폭증할 것이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차량용 비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취약하므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을 체계적으로 구축했으면 한다. 그 시작은 자동차 제조사와 반도체업체(팹리스 및 파운드리) 간 전략적 협업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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