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경기 평택 공장의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라인(P2)을 조기 가동하기로 했다. 8인치(200㎜) 웨이퍼 반도체의 단가도 두 자릿수 인상하기로 했다. 반도체 품귀 현상과 함께 ‘슈퍼 사이클’ 국면에 들어가면서 사업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2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파운드리사업부는 최근 공시를 통해 이 같은 공격적인 사업 계획을 밝혔다. 극자외선(EUV) 전용 라인인 경기 화성 사업장(V1)의 생산량도 늘리기로 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상반기 V1 램프업(생산량 확대)을 하고 이르면 7월부터 P2 라인을 돌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스마트폰과 가전, 자동차 업체들의 ‘반도체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소니 등이 반도체 부족으로 원하는 만큼의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주문이 1년 이상 꽉 찼을 정도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며 “생산을 맡긴 고객사에서도 공급 시기를 앞당겨 달라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페북·테슬라 등과는 칩 공동개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경기 용인 기흥사업장 6라인에서 고객사 주문을 받아 8인치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그동안 8인치 공정은 ‘계륵’ 취급을 받으며 투자 순위도 뒤로 밀리기 십상이었다. 주력인 12인치(300㎜) 웨이퍼 기반 공정보다 단위 면적당 칩 생산량이 적고 장비가 노후화돼 생산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8인치 공정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건 작년 4분기부터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이미지센서, 차량용 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 등의 수요가 급격히 커지면서다. 이들 제품은 중앙처리장치(CPU) 등보다 설계가 복잡하지 않아 12인치 초미세공정이 아니라 8인치 라인에서 주로 생산된다.
특히 차량용 MCU 품귀 현상이 8인치 몸값을 올렸다.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차량 판매가 급감하면서 MCU 수요도 줄었다. 이에 파운드리업체들은 8인치 라인을 DDI 생산으로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4분기부터 MCU를 포함한 차량용 반도체 주문이 폭주하자 8인치 라인 전반적으로 ‘공급 부족’이 심각해졌다. KOTRA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세계 85개 자동차 공장이 ‘반도체 부족’으로 하루 이상 가동을 중단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8인치 공정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판가 인상 및 고수익 제품 중심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사업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통신칩, 이미지센서 등을 설계·판매하는 시스템LSI사업부는 “차 전장(전자장비)용 SoC(시스템온칩), 커스텀(custom) SoC 개발 등 신규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전장용 칩 ‘엑시노스 오토’를 개발하고 아우디 등에 납품한 실적이 있다. 최근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개발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전장용 SoC’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
‘커스텀 SoC 확대’는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 등 외부 고객사의 의뢰를 받아 칩 설계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업체는 전통적 반도체 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공지능(AI)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 ‘자체 칩’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 밖에 외주 생산을 맡기는 파운드리업체를 늘려 생산 차질을 방지하겠다는 뜻도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이미지센서 일부 물량을 자사 파운드리가 아니라 대만 UMC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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