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당초 계획안인 105층 대신 50층으로 낮춰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기로 했다. 국내 최고층 건물이라는 '상징성'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비용을 아껴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기로 하면서 이른바 'MK'의 숙원인 GBC 사업 변화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2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대차그룹 GBC 테스크포스(TF)는 105층으로 계획 중이던 GBC 높이를 50층으로 낮추겠다는 내용의 변경 의사를 국방부에 전달했다. 건물 높이를 낮춤에 따라 1개 동짜리 건물을 3개 동으로 나눠 짓겠다는 계획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현대차그룹은 2014년 삼성동 옛 한전부지를 10조5500억원에 사들이고, 이곳에 통합사옥으로 쓸 569m 높이 초고층 타워 1개 동과 숙박·업무시설 1개 동, 전시·컨벤션·공연장 등 5개 시설을 건설하려 했다. 원안대로 완공되면 GBC는 제2롯데월드(555m)를 제치고 국내 최고층 건물이 된다. 완공 시점은 2026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GBC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오랜 염원이 담긴 사업이다. 2014년 당시 감정가의 3배가 넘는 가격에 옛 한전부지를 사들이고 GBC 건립을 추진한 것도 정몽구 명예회장이었다. 2016년 7월 정몽구 명예회장은 GBC 공사 현장을 방문해 "GBC는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100년의 상징이자 초일류 기업 도약의 꿈을 실현하는 중심"이라며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회장 취임 후 GBC 설계 원안이 조정될 수 있다는 그간의 전망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앞서 GBC는 공군부대 작전 방해, 봉은사 일조권 침해 분쟁 등 각종 논란으로 높이가 변경될 수 있다는 설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그러다 올해 들어 현대차 내부적으로도 본격적으로 105층 높이 건물 대신 70층 2개 동 내지 50층 3개 동으로 설계안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50층 3개 동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건물 높이를 낮추면 건설비는 물론 건설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 건물 층수가 많아질수록 고층 무게를 떠받들기 위한 기반 설계, 바람에 거뜬히 견디기 위한 특수 기술이 투입되는 만큼 기간은 길어지고 비용은 증가한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설계 변경을 통해 최대 2조원의 비용을 감축할 수 있다. 원안대로 진행할 경우 공사비는 3조7000억원으로 추산되지만, 50층 3개 동 규모로 설계를 변경하면 공사비를 1조5000억원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건물을 260m 이상 높이로 짓게 되면 공군부대 작전 방해에 따른 해결 방안의 일환으로 최신 레이더 구입 비용을 대납해야 하는 데 이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층수를 낮추면 건물 안정성이나 공간 활용성 측면에서도 더 효과적이다. 이 밖에 삼성동 봉은사와 갈등 비용 등도 감축할 수 있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자금 절감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를 더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는 올해를 전기차 원년으로 선포하고 전기차를 비롯해 자율주행차, 모빌리티 등 신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2025년까지는 총 100조원 이상 투자 계획도 내놨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말 "2025년까지 매년 20조원씩 총 100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낀 2조원은 새로운 사업 분야의 인수합병을 위해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규모의 자금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에 총 1조원 정도를 투자한 바 있다. 2019년에는 미국 자율주행 업체 앱티브와 함께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데 약 2조원(16억달러)을 투입했다.
다만 설계 변경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이미 강남구의회의 반대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105층 건물보다 관광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의회는 지난 17일 현대차그룹이 설계변경 의사를 전달했다는 소식에 임시회의를 열고 '반대 결의문'을 채택했다.
강남구의회는 "현대차그룹이 자사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경제발전을 위해 GBC신축사업을 원안대로 진행해 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 의회 차원에서 대처하기 위해 결의문을 채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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