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핵심 소재 및 부품의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국가 전략을 수립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계획이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을 배제하는 새로운 공급망을 동맹국과 만들어 핵심 소재·부품을 중국에 의존하는 구도를 바꾸려는 시도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가 입수한 행정명령 원안에 따르면 반도체 외에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의료용품 등이 미국의 새로운 공급망 구축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은 희토류의 80%, 의료용품의 90%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반도체는 한국과 대만, 일본과 연대하고 희토류는 호주, 아시아 각국과 협력해 중국 의존도를 낮출 방침이다.
중요 소재·부품 공급망의 정보를 공유하고, 유사시 남는 품목을 신속하게 빌려주고 빌려 쓰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동맹국 간 추가 생산능력과 비축품을 확보하는 방법도 협의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동맹국에 중국과의 거래를 줄일 것을 요청할 수도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는 것은 소재·부품 공급망이 국가 안전보장과 직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2018년 이후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자국의 소재·부품을 무기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영토분쟁을 벌인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규제한 전례가 있다.
이와 관련해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현 미국 AI국가안보위원회 의장)는 23일(현지시간) 미 상원 국방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5~10년이 아니라 1~2년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반도체는 중국이 무기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소재·부품으로 꼽힌다. 주요 반도체 생산업체를 보유한 나라는 한국, 대만, 중국, 일본, 미국 등 5개국 정도인데 중국의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대만과 한국이 각각 22%와 21%로 1~2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점유율은 15%로 3위이지만 2030년엔 24%까지 늘어나 세계 1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 의존을 방치했다가 무역규제를 당하면 국가안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우려다.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등 반도체 강국과 연대하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은 물론 중국의 점유율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는 한국에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선택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연초부터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불거지면서 미국 자동차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것도 미 정부가 공급망 재편에 나선 계기로 분석된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글로벌 공급망을 새로 짜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가장 먼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대만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애리조나주에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공장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TSMC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건설하는 이 공장에서 2024년부터 군사용 반도체를 양산할 계획이다. 미국은 작년 하반기에 일본, 대만, 호주 등 기술과 자원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동맹국에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을 구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도쿄=정영효/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