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이런 시점에 정치권이 시끄럽다. ‘백신 1호 접종자’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의 주장이 나온 뒤 여야 간 논쟁이 이어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원수가 실험 대상인가. 국가원수에 대한 조롱이자 모독”이라고 했다. 이에 김근식 국민의힘 전략실장은 “그럼 국민이 실험 대상이란 말인가”라며 받아쳤다.
우리 정치권의 모습은 지난해 말 미국과 유럽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될 때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미국에선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접종에 나섰고 이 장면이 생중계됐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앞장서서 백신을 맞았다. 백신 접종을 불안해하는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요즘 정치권에서 ‘안전한 백신’이라고 부르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작년 말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안전성 논란을 빚었다. 인류에게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기술이어서다. 지금까지 접종 직후 부작용은 대체로 경미한 것으로 보고되지만 장기적인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이렇다 보니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이 나선 배경이다.
질병관리청이 65세 이상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보류한 것도 안전성 문제라기보다는 임상에서 효능에 대한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65세 이상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이용 제한을 권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마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국민이 오해하게 만들었다. 백신 접종 거부 사태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실제 백신 접종 거부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주변에 접종 의사가 아예 없다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최근 만 18세 이상 10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순서가 오면 바로 접종하겠다’는 응답은 45.8%였다. 국민 절반이 접종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정치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이 아쉽다. 현재로선 백신 접종이 일상 회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 만큼 정쟁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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