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 논란으로 시끄럽다. 청와대 비서진의 항명에 가까운 사의 표명, ‘검찰개혁 시즌2’ 속도 조절을 둘러싼 당청 간 엇박자,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해당 부처의 이견 노출이 연달아 겹치면서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통상적인 의견 조율 과정”이라며 애써 레임덕 논란에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조차 최근 불거진 일련의 사태를 레임덕의 신호탄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레임덕은 한마디로 대통령의 ‘영’이 안 서는 상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조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 지지율로 이를 넘어서는 차기 대권주자가 없다. 여당이 대통령에게 맞설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임덕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는 뭘까.
당·정·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발이 감지되고 있어서다. 최근 불거진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의 파동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인사안을 승인했음에도 조율 과정에서 자신이 배제됐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의를 밝혔고, 이 결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졌다. 대통령 비서의 처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당의 반발이 레임덕 논란에 불을 댕겼다. 지난 22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발언이 속도 조절론으로 해석되자 더불어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이 강력 반발했다. 박 장관이 “제가 속도 조절이라고 표현하지 않았고 대통령도 그런 표현을 쓴 바 없다”고 정리했지만 대통령과 의견이 다를 때 여당이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반발하는 모습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정부 부처에서도 조율이 안 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공개적으로 제출했다. 지급거래 청산 업무를 금융위원회가 감독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을 놓고는 한국은행이 반발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와 관련한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신경전도 계속되고 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조정한 법안을 두고 부처끼리 다툰다”며 “지금이 정책 레임덕이 아닌가 싶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레임덕으로 평가하긴 이르다고 분석했다. 레임덕의 대표적인 현상은 여권 유력 주자가 지지율이 떨어진 대통령에게 각을 세워 본인의 입지를 다지는 것인데 그런 움직임은 없기 때문이다.
국토부 등에서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은 공무원 조직 내에서 원칙주의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직권남용 수사, 최근 감사원의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감사 등으로 절차와 법을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대통령이나 장관이 시킨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권한을 따지는 시대가 왔다”며 “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피할 수 없는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레임덕 논란은 대통령의 소통 방식으로 불거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 등 정치적 쟁점마다 문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대통령이 의견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해석의 문제와 혼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임기 5년차를 맞은 정권의 동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은 대통령 지지율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혼란 정도지만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레임덕이 본격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임기 후반일수록 정책 등에 ‘가르마’를 확실히 타줘야 혼선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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