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 안 푼다고 "정말 나쁜 사람"…정말 나쁜 정치 아닌가

입력 2021-02-25 17:57   수정 2021-02-26 00:10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비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다. 지난 14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4차 재난지원금 규모를 두고 홍 부총리가 “12조원 이상은 어렵다”고 하자 “지금 소상공인들이 저렇게 힘든데 재정 걱정을 하고 있다”며 대놓고 겁박한 것이다. 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이런 식으로 몰아세울 정도면 여권이 공직자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여당은 정부에 4차 재난지원금용으로 20조원 이상 편성을 종용했다. ‘소득하위 40% 계층 일괄지급’ 제안도 했다. 재정 당국은 12조원 이상 편성은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무위로 돌아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나랏빚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까지 약속한 마당이고 월 25조원 들어가는 손실보상법안까지 입법이 되면 문재인 정부 출범 때 660조원이던 나랏빚은 올해 1000조원을 훌쩍 넘을 게 뻔하다. 내년 대선도 있어 앞으로 현금 살포 공약이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른다. ‘재정폭주’, ‘매표(買票)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재정 수장인 홍 부총리가 제동을 거는 것은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 의원들은 “재정지출은 다다익선(多多益善)보다 적재적소(適材適所)”라고 상식적인 말을 한 홍 부총리에게 “문재인 정부 사람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등 집단 공격에 나섰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탈원전 감사와 관련,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해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 주인 행세 한다”고 한 것과 같은 인식이다. 선출된 우리가 주인이고, 공직자는 정권의 충견(忠犬) 역할만 하면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물론 재정 당국이 이런 처지로 몰린 건 자초한 측면도 있다. 홍 부총리는 그간 여당의 압박에 번번이 물러서면서 ‘곳간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홍두사미’ ‘홍백기’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까지 얻었다. 여당이 그를 만만하게 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여당이 정부를 국정 운영의 파트너가 아니라 상하 관계로 여기고 우격다짐식으로 압박하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돈을 풀지 않는다고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정말 나쁜 정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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