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크래프톤은 매월 ‘크래프톤 라이브 토크’를 연다. 온·오프라인 사내 소통 프로그램이다.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 김창한 대표 등이 회사 현안을 설명하는 자리다. 25일에는 김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 대표는 “개발직군 연봉을 일괄 2000만원 인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인 블라인드의 게임라운지(게임사 직장인이 모두 볼 수 있는 게시판)도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와우!’ ‘파격적이다’ ‘부럽다’ ‘우리 회사는 뭐 하나’ 등의 글이 쏟아졌다.
크래프톤은 이날 올해 개발직군(엔지니어), 비(非)개발직군의 연봉을 일괄적으로 각각 2000만원, 1500만원 올린다고 발표했다. 신입 초봉은 개발자 6000만원, 비개발자 5000만원으로 책정됐다. 게임업계뿐 아니라 국내 주요 대기업군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직원 500명 이상 대기업 대졸 신입 사무직 근로자 평균 연봉은 3347만원이었다. 삼성전자 신입 초봉은 4676만원 정도다.
표면적으로는 사상 최대 실적의 내부 공유가 파격 인상의 배경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게임, 인터넷 등 비대면 산업군의 호실적이 경영진의 공격적 결단을 쉽게 해주고 있다는 얘기다. 비상장사인 크래프톤은 지난해 매출 2조원을 올려 약 1조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재 이탈을 선제적으로 방지하자는 계산도 함축돼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터넷업계 호황으로 ‘개발자 쇼티지(품귀 현상)’가 나타나면서 IT 기업들이 앞다퉈 개발자 처우 개선에 나서고 있다”며 “실탄이 넉넉한 곳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인상 도미노가 시작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MZ세대(밀레니얼 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많다. 투쟁에 의존했던 이전 세대보다 성과에 대한 합리적 보상에 민감한 직원들을 관리하는 고육지책이라는 얘기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개인의 노력에 따른 즉각적인 보상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SNS를 통해 임금, 회사 복지 등과 관련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MZ세대의 특성도 한몫하고 있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회사 소식이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서비스인 블라인드와 카카오톡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퍼진다”며 “소리 없이 익명으로 증폭되는 움직임이 경영진에게는 파업만큼이나 강력한 압력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이사회 의장도 이날 직원 앞에 섰다. 최근 불거진 성과급 지급 기준과 인사평가 논란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김 의장은 “소통을 통해 조금 더 나은 문화로 나아갈 수 있다면 오늘의 이 자리가 굉장히 의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GIO는 “올해 진심으로 가장 기쁜 일 중 하나는 직원들이 만든 성과와 그 가치를 처음으로 스톡옵션을 통해 주주뿐 아니라 직원과 함께 나누게 된 점”이라고 말했다.
김주완/구민기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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