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 가족은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언어는 영어나 어떤 외국어보다 깊은 ‘마음의 언어’입니다.”
한 가족이 자신들만의 마음의 언어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 ‘미나리’가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차지했다. 이 작품을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의 기쁨을 이렇게 전했다. 아카데미(오스카)와 함께 미국 양대 영화상으로 꼽히는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 전초전’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작품상을 포함해 오스카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먼저 골든글로브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기생충’과 같은 경로를 밟고 있는 ‘미나리’가 오스카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미나리’는 정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 아칸소로 이주한 제이콥(스티븐 연 분)·모니카(한예리 분) 부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날 시상식에서도 영화 못지않은 가족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정 감독의 딸이 수상 소감을 말하려는 그를 껴안으며 “내가 기도했어”라고 외쳐 시청자들의 미소를 자아냈다.
이번 수상으로 ‘미나리’는 미국영화연구소(AFI) 올해의 영화상,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등을 포함해 총 75관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겼다. 정 감독이 수상 소감으로 말한 ‘언어(language)’란 단어엔 그 아쉬움이 담겨 있다. 미나리는 작품상이 아니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논란이 일었다. 같은 상을 받은 ‘기생충’은 한국 감독과 제작사가 만든 ‘한국 영화’다. ‘미나리’는 미국 감독과 제작사가 만든 미국 작품이다. 브래드 피트의 영화사 플랜B가 제작했다. 하지만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국어영화로 분류됐다. 또 ‘기생충’이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감독상·각본상 3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을 제외하고는 다른 상 후보에 오르지 못해 더 큰 비판이 제기됐다. 봉 감독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언급한 ‘1인치 자막의 장벽’이 여전히 깨지지 않은 채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신들도 이날 시상식 이후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이 아니라 작품상 감이었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HEPA가 비영어권 대사 때문에 미나리의 작품상 수상 자격을 박탈해 비판을 받았다”며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빛낸 사실상의 ‘우승작’으로 미나리를 꼽았다.
오스카에서 ‘미나리’의 강력한 경쟁작으로는 ‘노매드랜드’ 등이 꼽힌다. 중국 출신인 클로이 자오 감독이 만든 ‘노매드랜드’는 이날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감독상을 차지했다. 한 도시가 경제적으로 붕괴된 후 그곳에 살던 여성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이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아카데미 후보작은 오는 15일 발표된다. 시상식은 다음달 25일 열린다. ‘미나리’는 3일 국내에서 개봉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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