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PEF운용사 블랙스톤이 서울사무소를 꾸려 한국시장 재진출을 예고하면서 각 글로벌PEF들의 한국사무소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PEF 중 일부는 서울 등에 사무소를 두고 국내 투자자와 교류하고 투자 대상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M&A 시장에서 '대어'들이 등장하고 점차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국내에서의 성과를 기반으로 글로벌 PEF 꿈의 직책인 '매니징디렉터(MD)'에 오른 한국인 인사들도 속속들이 보인다.
다만 대외적으론 국내 사무소의 역할은 '음지'에 머물러야 한다. 배경에는 세금 문제가 있다. 유수의 글로벌PEF들이 한국사무소를 통해 국내업체를 인수하거나 투자해 '대박'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지만, 한국사무소가 실제 거래에 관여한 점이 드러났다가는 국세청에서 대규모 세금을 추징당할 수 있어서다.
대부분 글로벌 PEF 운용사(GP)가 해외 혹은 조세피난처 등에 등록해 펀드를 조성할 뿐더러, 투자도 해외에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를 활용하기 때문에 한국사무소가 직접 거래에 관여하는 건 금기시된다. 각 PEF의 서울사무소 역할도 M&A를 자문하거나 실무를 돕는 '컨설팅' 역할로 한정하고, 이에 따른 자문료를 제공받는 형태로 우회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행 국내 세법은 주요 해외국가와의 협정을 통해 외국법인이 국내에서 소득을 올릴 경우 현지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선 국내에 고정사업장을 갖추지 않은 점이 인정돼야 한다. 이 때문에 과거엔 글로벌 PEF들도 한국엔 연락사무소 정도만두고 홍콩과 싱가포르 내 아시아지역 인력이 필요시에만 한국에 와 업무를 보는 형태로 운영됐다.
문제는 현지에 사무소를 갖추고 인력을 뽑기 시작하는 등 국내에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 경우, 해당 사무소에 역할에 따라 조세당국의 '사정권'에 들 수 있다는 점이다. 양도세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국내에서 법인세 납부 대상에 오를 수 있다보니 세금을 피하는 문제가 PEF들 사이에선 골치아픈 문제로 꼽혀왔다. 과세 향방에 따라 펀드 내부수익률(IRR)에도 직접적인 역할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PEF 사이에서 교과서처럼 통용되는 방법은 현지 사무소의 역할을 '컨설팅'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한 글로벌PEF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PEF 내부에선 각국 내 사무소를 '컨설팅 브랜치(Consulting Brunch)'로 통칭한다"라며 "우리는 독립된 사업자도 아닐 뿐더러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기구일 뿐, 특정 업무를 도울 사업소를 연 것일 뿐이란 논리를 내세운다"고 말했다.
예를들어 KKR의 KCFT(LS엠트론 동박사업부문, 현 SK넥실리스) M&A 의 경우, 법적으론 캐나다에 등록한 KKR 아시아 3호펀드가 미국 델러웨어주에 설립한 SPC(Pantheras Holdings LLC·판테라 홀딩스)를 통해 투자한 거래다. 어디까지나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기업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이기 때문에, 조세조약에 따라 PEF 혹은 최종 투자자(LP)들의 거주지 규정에 맞춰 양도세 등 세금을 납부하면 되는 구조다. 델러웨어주는 양도소득에 대해 별도의 과세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SPC는 사실상 수천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감면받는다. 만약 한국에 등록된 KKR 한국사무소(KKR Korea LLC)가 투자 의사결정에 개입했다면 조세목적상 한국에 거주한 법인으로 간주돼 국내에서 과세대상이 되는 셈이다.
KKR이 KCFT를 1조2000억원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인수 측인 SKC와 맺은 계약서를 보면, 거래를 이끌어온 박정호 KKR 한국사무소 대표가 아닌 매각 당사자인 SPC ‘판테라홀딩스’의 임원들이 서명을 했다. 박 대표가 KCFT 투자와 매각 성과로 KKR 내 글로벌 매니징디렉터(MD)에 오르는 등 기여했던 점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법적으론 철저히 서울사무소와 절연해야하는 구조인 셈이다. 칼라일·CVC캐피탈·TPG 등 국내에 사무소를 둔 글로벌PEF들도 이와 대동소이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조단위 거래를 성사시켜도 글로벌PEF의 서울사무소가 얻는 수익은 운용사와의 계약에 따라 정해진 일정정도의 수수료다. 즉, 서울사무소 소속 직원들의 월급, 사무소 운영비, 각 인력들의 성과보수(Carried interest) 등만 별도로 한국사무소에 송금되는 구조다. 국내에서 직접 수령할 수 있는 세금은 이에 따른 소득세 정도다. '계약과 관련, 한국사무소가 투입한 비용의 110%를 GP가 보전해준다'는 식의 조항도 통상적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글로벌PEF에선 한국사무소 인력들의 성과급을 직접 지급하는 대신 한국에서 진행된 거래에 직원들이 일부 출자하도록 독려한다. 양도소득세(Capital-gain tax)로 분류돼 일부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다.
고정사업장 문제가 국내에서 자리잡힌 건 2017년 론스타 대법원 판결 이후다. 국세청은 2008년 론스타가 국내 고정사업장(론스타어드바이저스코리아)에서 도움을 받아 외환은행 투자 등을 단행해 막대한 수익을 얻은만큼 여기서 파생된 배당소득·양도소득 등을 국내원천소득으로 간주해 국내세율로 과세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론스타 국내사무소의 역할은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적·예비적 활동 또는 자산을 관리하며 그 처분시점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사후적·보조적 활동이었다"며 해당 사무소가 고정사업자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론스타의 수익창출과정 중 자금 모집 및 투자, 투자회수에 관한 주요한 결정이 모두 해외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글로벌PEF 입장에선 자신들의 행동 반경을 정해준 중요한 판례로 회자하고 있다. 해당 판결을 이끌어낸 김앤장법률사무소가 글로벌PEF들에 세금을 피하기 위한 '행동 지침'을 제공하면서, 지금까지도 글로벌PEF 자문을 독식한 배경으로도 거론된다.
실제 이 때문에 국내 M&A 협상 중에도 금기시되는 행동들이 빈번하다. 국내 기업을 인수하거나 매각하는 계약이어도 최종 서명을 홍콩·싱가포르 등에서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또 글로벌PEF가 투자한 포트폴리오 회사에 이사진으로 한국사무소 인력이 등재하는 문제도 '거래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여러 법률검토를 거쳐야 한다. 당장 과세당국이 해당 PEF의 활동과 한국사무소 인력 파견을 연속된 거래로 간주할 경우, 과세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글로벌 PEF의 한국 대표 이자 글로벌 의사결정권자"라 대외적이라 공표하는 것도 피해야할 행동이다.
한 M&A 담당 변호사는 “일부 글로벌 PEF는 협상장에서 한국인이 한국어로 된 명함을 주고받는 것도 추후에 국세청에 문제 소지가 될 수 있다고 여겨 전원 영어 명함을 준비할 정도로 철저히 대비한다"고 설명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