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결기'였나, '홍백기'였나.
2일 발표된 올해 첫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을 평가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낙연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물론, 정세균 국무총리 등과도 각을 세워왔다.
재정건전성 등을 감안할 때 추경 편성 규모를 최소화 해야 하고, 재난지원금 지급은 피해계층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정세균 총리) "정말 나쁜 사람"(이낙연 대표) 등의 이야기까지 들었지만 소신을 꺾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추가경정예산안을 들여다보면 홍 부총리의 소신이 끝까지 지켜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별지원 등의 원칙은 지켜졌지만 10조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하게 돼 재정건전성이 또 한번 악화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홍 부총리가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상처 뿐인 영광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소상공인 등 특정 계층에 집중되고 있는만큼 해당 계층에 지원을 두텁게 하는 것이 맞는다"는 이유에서다.
당정간 대립이 첨예해 지는 가운데 지난달 중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중재하며 이같은 논쟁은 일단락됐다. 이번 4차 지원은 선별 지원을 기본으로 하고 이후에 보편 지원을 논의한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의 손이 올라간 순간이다.
정 총리가 강하게 제기한 자영업 손실보상제 도입도 막아냈다. 사회적 거리두기 피해와 관련된 여론이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악화돼자 줄어든 매출이나 수익의 일정 부분을 국가가 의무적으로 보상해주자는 것이 손실보상제의 골자다.
홍 부총리는 기재부 내부 검토를 통해 손실보상제 법제화는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군사통제구역, 환경보호구역 등 다른 재산권 행사 제한 조치와 형평성 문제가 생기고 피해를 정확히 산정하기 힘든 가운데 법적 다툼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문제 제기를 정 총리가 받아들이며 손실보상제 도입은 일단 보류됐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과 방법 등 원칙의 영역에서는 홍 부총리의 결기가 모두 통했다.
지급과 관련된 원칙이 지켜졌지만 실제 추경은 19조5000억원으로 20조원에 육박하게 됐다. 4조5000억원은 기존 예산을 활용한다지만 15조원의 추경도 역대 세 번째에 이르는 규모다.
15조원은 국민 전체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던 지난해 5월 1차 재난지원금 예산(14조3000억원)보다 많다. 한국은행 결산 잉여금과 기금 여유재원까지 최대한 재원을 짜냈지만 결국 9조9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홍 부총리가 원칙을 고수했음에도 추경 규모 확대를 요구하는 정치권의 압박까지 차단할 수는 없었다. "선별 지급 등의 원칙은 추경 규모를 가능한 줄이기 위한 것이었던만큼 홍 부총리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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