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투기' 줄줄이 적발땐 신도시 신뢰 추락…공공주도 개발도 '흔들'

입력 2021-03-03 17:35   수정 2021-03-11 18:42


“3기 신도시로 지정한다고 개발을 못하게 막더니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이 투기를 할 줄은 몰랐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입니다.”

경기 시흥시 과림동에서 만난 주민 김모씨(56)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현장의 다른 주민도 “LH와 정부가 이 지역의 자체 개발을 막더니 내부 정보를 이용해서 토지를 취득한 것 아니냐”며 분노했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3기 신도시 개발 정책이 ‘LH 땅투기 의혹’에 휘청거리고 있다. 신규 공공택지 정보를 직접 다루는 LH 직원들이 해당 지역의 토지를 매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다. 해당 지역 주민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기 신도시 전수조사 착수

3일 한국경제신문이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시흥시 과림·무지내동의 토지를 직접 확인해본 결과 토지 보상을 노린 정황이 파악됐다.

등기부등본상 LH 직원 김모씨가 2019년 6월 2739㎡를 사들인 것으로 돼 있는 과림동 1XX-7 일대 토지엔 이미 수백 그루의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더 많은 보상금을 받기 위해 투기 세력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1년 전에 누군가 와서 나무와 작물을 심는 걸 봤는데, LH 직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LH 직원이 내부 정보로 알음알음 토지를 사들였는데 조사해도 뚜렷한 증거가 없으면 아무 일 없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은 “이제 정부 말을 믿을 수가 없다”며 “신도시 지정을 취소하고 주민이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도 이날 땅투기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 내용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LH 직원 13명이 해당 지역 내 12개 필지를 취득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 직원들을 직위해제 조치했다.

국토부는 총리실과 합동으로 광명시흥을 포함해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국토부·LH·관계 공공기관의 관련 부서 직원 및 가족에 대한 토지거래현황 등을 전수조사할 방침이다. 다음주까지 기초조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투기 의혹 등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제도적인 방지 대책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규 택지 개발과 관련된 국토부·공사·지방공기업 직원은 원칙적으로 거주 목적이 아닌 토지 거래를 금지하겠다”며 “불가피할 경우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공공 개발 등 공급 정책 신뢰성 타격
이번 땅투기 의혹으로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신규 공공택지와 도심 공공 개발에서 시행사 역할을 하는 LH 내부에서 비리 의혹이 터진 만큼 주민의 동의를 얻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실제로 현재 3기 신도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인터넷 부동산카페 등에서 나오고 있다.

투기 의혹이 제기된 광명시흥 신도시 외에 다른 신도시에서 추가적으로 투기 의혹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해당 지역 원주민들이 반발하면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3기 신도시는 정부가 2018년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방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2018년 12월 남양주 왕숙과 하남 교산, 인천 계양지구를 지정한 데 이어 2019년 5월에는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지구를 발표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여섯 번째 신도시인 광명시흥지구를 추가 지정했다.

지난달 ‘2·4 대책’을 통해 발표한 공공 주도 개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공 주도 개발은 크게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과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으로 나뉜다. 두 개발 방식 모두 LH가 공공시행사로 나서게 되는데, 주민의 불신과 반발이 예상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추가적인 투기 의혹이 드러날 경우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진석/광명시흥=배정철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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