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픽업트럭 시장이 점차 커지며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한 차량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오프로드 브랜드 지프가 선보인 글래디에이터는 지프 특유의 강렬한 오프로더 감성을 풍기는 외모와 의외로 부드러운 내면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7년 2만3000여대 수준이던 국내 픽업트럭 시장은 소득 수준 향상과 레저 열풍에 힘입어 2019년 4만2000여대, 2020년 3만8000여대를 기록하며 4만대 규모로 성장했다. 이에 수입차 브랜드들도 앞다퉈 픽업트럭을 선보이고 나섰다. 지프의 글래디에이터도 그 중 하나다.
지프 글래디에이터는 한 눈에 보기에도 거대한 덩치를 자랑한다. 픽업트럭 전문 브랜드 램의 '1500'과 섀시를 공유하는 지프 글래디에이터의 전장·전폭·전고는 5600·1935·1850mm다. 국내에서 나름 '한 덩치' 한다는 차들과 비교해도 글래디에이터는 전장과 전고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바퀴마다 안쪽에 장착된 폭스샥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외관 디자인은 영락없는 지프 랭글러다. 특유의 그릴과 네모난 차체, 튀어나온 범퍼, 동그란 전조등까지 그대로 빼다 박았다. 측면에서 보면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긴 차체가 부각되긴 한다.
짐을 싣는 트럭 베드도 1530·1450·450mm 크기로 여유롭다. 적재중량이 300kg에 불과하다는 지프의 안내가 엄살처럼 느껴질 정도다. 트럭 베드에는 롤-업 소프트 토너 커버가 장착됐다. 픽업트럭을 시승하는 경우 트럭 베드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몰지각한 행인을 종종 경험하게 되는데, 그런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실내 공간은 트럭다운 투박함이 묻어나면서도 꼼꼼한 마감으로 고급감을 더했다. 무광 색상으로 마감된 실내와 붉은 스티치로 마감된 가죽 시트는 보기에 제법 매력적이었고 촉감도 준수했다. 아날로그 계기반 사이 자리잡은 7인치 클러스터는 현재 속도와 연비, 미디어, 롤&피치 등의 정보를 보여준다. 8.4인치 메인 디스플레이는 내비게이션이 다소 아쉽다는 점 외에 크게 불편한 점이 없었다.
주행에 나서자 의외로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프로드 타이어를 장착한 상태였던 만큼 거친 주행감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제법 쾌적했다. 수직으로 솟은 A필러 때문에 풍절음이 났지만 도로의 패인 부분이나 과속방지턱 등은 여느 도심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보다 부드럽게 넘어갔다. 뒷좌석 동승자도 우락부락한 외형과 달리 승차감이 좋다는 평을 내놨다.
2.3t에 달하는 무게감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승차인 지프 글래디에이터 루비콘에 달린 3.6L V6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284마력, 최대 토크 36㎏·m의 동력 성능을 낸다.
진입각은 40.7도, 램프각과 이탈각은 18.4도, 25.0도를 지원하며 수심 760mm까지 도하가 가능하다. 최대 견인력도 2.7t에 달한다. 일반 도로 주행이나 오프로드 주행에서 만족스러운 성능을 갖춘 셈이다. 공인 연비는 6.5km/L이지만, 시승 과정에서는 7.2km/L가 나왔다.
스티어링 휠의 감각은 다소 헐거웠다. 큰 덩치와 함께 일반 도로 운전을 긴장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다만 오프로드 주행에서는 헐거운 스티어링 휠 세팅이 진가를 발휘한다는 설명이다. 간단한 임도 등을 주행해보니 거침없이 스티어링 휠을 돌릴 수 있어 호쾌한 느낌도 들었다. 전자식 프론트 스웨이바 분리 장치 등 오프로드 주행을 위한 다양한 기능도 갖추고 있다.
'2020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됐던 지프 글래디에이터는 지프 특유의 감성과 함께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지난해 접수한 사전계약에서는 2주 만에 예정됐던 300대가 완판될 정도로 높은 마니아층 인기를 보여줬다. 어디까지나 트럭이기에 개별소비세와 교육세가 면제되고 취득세가 5%로 낮으며, 연간 자동차세도 2만8500원에 불과하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오프로드 마니아가 아닌 일반 운전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차량이었다. 도로를 주행할 땐 실수로 차선을 밟지 않을까 조심해야 하고 주차할 때는 차를 끝까지 집어넣어도 오버행이 주차칸 밖으로 튀어나왔다. 좁은 골목길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가격은 6990만원으로 국내서 판매되는 픽업트럭 중 가장 비싸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영상=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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