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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 안팎으로 투자가치가 있는 작품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올해에만 100번은 받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조건은 ‘강남에서 월 수익 100만원이 보장되는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찾아달라’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좋은 작품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5일 만난 서울에 있는 한 갤러리 대표의 말이다. 미술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다.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이어 새로운 투자처로 미술시장을 주목한 데다 젊은 컬렉터들이 속속 진입하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 꾸미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미술시장의 활황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작품 구매도 활발하다. 선화랑이 선보인 이영지 작가의 작품은 정식 개막 전에 모두 팔렸다. 학고재갤러리가 내놓은 김재용 작가의 조형작품 ‘도넛’ 시리즈도 대부분 판매됐음을 뜻하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개막 당일 전시장을 방문한 구자열 무역협회장도 신진 작가 오슬기의 작품을 구매했다.
통상 아트페어에서는 100만~200만원대 소품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하지만 올해 화랑미술제에서는 대작도 심심찮게 거래되고 있다. 부스 전체를 김창열 개인전으로 꾸민 갤러리BHAK에서는 1억원을 훌쩍 넘는 ‘물방울’ 여러 점이 새 주인을 만났다. 선화랑이 내놓은 정영주 작가의 작품은 개막 당일 구매자가 몰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 갤러리 대표는 “통상 아트페어에서는 고객들이 이틀 정도 작품을 탐색한 뒤 마지막날 구매하는 패턴이 일반적인데 올해는 개막날부터 구매가 성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매시장에서는 돈의 쏠림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달 열린 서울옥션 메이저 경매에서는 출품작 187건 가운데 169건이 낙찰돼 낙찰률 90%를 기록했다. 서울옥션의 역대 메이저 경매 중 최고 기록이다. 낙찰총액은 110억5860만원으로 1년 반 만에 100억원대를 회복했다. 다음달 열리는 케이옥션 메이저 경매에는 낮은 추정가 기준 총 170억원어치의 작품이 출품된다. 최근 10년간 케이옥션이 개최한 경매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블루칩 작가의 작품 중심으로 몸값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김창열의 ‘물방울’(1977년)은 지난달 서울옥션 경매에서 10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작년 7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1980년작 ‘물방울’이 기록한 5억9000만원을 훌쩍 넘어서며 작가의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해 2억원대에 거래된 박서보의 ‘묘법’ 연작은 3억원 아래로 살 수 없다는 것이 화랑계의 전언이다.
미술품은 보유하는 동안 감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동시에 가치 상승도 기대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모든 투자상품이 그렇듯 미술품 역시 무리한 투자는 금물이다. 한 갤러리 대표는 “최근 한 고객이 7억5000만원어치를 계약했다가 잔금을 치를 때 ‘여기저기 대출을 냈다’고 하기에 작품을 당장 회수했다”며 “무리해서 사면 작품 자체를 즐길 수 없다”고 말했다.
블루칩 작가라면 덮어두고 사는 ‘묻지마 투자’도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한 아트딜러는 “10년 전 2억~3억원에 거래되던 유명 작가 작품이 지금은 2000만원에 내놔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미술품을 사두면 무조건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글=조수영/사진=강은구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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