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로 가는 '대전환의 길'

입력 2021-03-11 17:44   수정 2021-03-12 03:10


미힐 레인서는 2006년 유니레버의 차(茶) 브랜드 립톤의 브랜드 개발 관리자로 합류했다. 그가 립톤에서 처음 느낀 것은 차를 재배하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차를 생산하기 위해 열대 숲을 경작지로 전환하고, 차를 말리는 데 필요한 장작을 마련하기 위해 벌목을 하다 보니 삼림이 파괴됐다. 이런 관행이 공급사슬 전체의 생존 가능성마저 위험에 빠뜨린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래서 가지치기한 나무를 땔감으로 쓰지 않고 농부들에게 다시 심게 했다. 유기 폐기물을 소각하는 대신 퇴비를 만들도록 독려했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차를 생산하면서 립톤의 생산비용은 5% 상승했지만 예상치 못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수확량은 전보다 5~15% 늘어났고 차의 품질 개선과 운영비 절감, 높은 가격 실현까지 이뤄지면서 전체 수입이 10~15% 늘어난 것이다. 미힐과 유니레버의 노력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차 수확 노동자의 삶을 건강하게 바꿔놨다. 공급사슬의 건강과 복원력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비용 상승을 자처한 그의 반직관적 시도는 결국 제품의 한계 수요까지 끌어올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인 데다 품질, 가격, 기능성까지 마음에 든다면 소비자는 지속 가능한 제품으로 옮겨갈 거라는 미힐의 거시적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지금과 같은 탄소집약적 기업 시스템은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다고 느끼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간의 맹목적 이익 추구로 귀결된 주주우선주의로 인해 극심한 불평등과 환경파괴, 노동권과 인권침해 등이 일어났고 기업들 사이에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 슬론스쿨 석좌교수이자 하버드대 특별교수 25인 중 한 명인 리베카 헨더슨 역시 이런 논의들에 궤를 같이한다. 그는 “문제 해결의 주체는 비즈니스가 돼야 한다”며 “기업의 목적에 대한 생각, 사회에서 기업이 담당하는 역할, 기업과 정부가 맺고 있는 관계를 바꿈으로써 수익성이 높으면서도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가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하버드대 경영대학에서 강의한 ‘자본주의 다시 상상하기’를 토대로 10년 준비한 끝에 내놓은 《자본주의 대전환》은 극심한 불평등과 생태적 과부하를 낳은 현재의 자본주의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 경영’ 등 지속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새로운 자본주의로 가기 위한 대전환의 길을 다섯 단계로 제시한다. 먼저 ‘주주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경제적 가치와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이른바 ‘공유가치 창출’을 기업의 목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들의 시도를 자극하고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현재 150억유로의 자산을 관리하면서 2억6600만유로의 안정적 수익을 올리고 있는 네덜란드의 트리오도스은행을 대표적 예로 꼽는다.

다음 단계는 목적지향형 기업으로의 변화다. 저자는 “기업이 내세우는 공유가치가 수익과 실질적 효과로 이어지려면 기업 구성원 모두가 목적을 자각한 상태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은 대우와 더 많은 권한의 위임은 이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재무적 환경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이 같은 변화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저자는 투자자들의 행동이 단기적 이익 추구에서 장기적이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재무 재설계’를 세 번째 단계로 제시한다.

저자는 “문제는 자유시장이 아니라 ‘통제받지 않는’ 자유시장”이라고 지적한다. 통제받지 않고, 생태적·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는 무임승차자들이 시장을 지배할 수 없도록 업계와 지역 내에 ‘자율 규제’ 협력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네 번째 단계다. 그는 “자유시장은 가격이 모든 가용 정보를 반영하고 게임의 규칙이 공정한 경쟁을 지지해줄 때만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며 “기업이 유해 쓰레기를 강에 버리고, 정치를 통제하고, 가격담합을 밀어붙인다면 자유시장 전체 부의 총액은 물론 개인의 자유도 확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자율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선 제도와 시장 간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 이것이 다섯 번째 단계다. 2015년 미국 인디애나주가 성소수자 차별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애플을 비롯한 주요 정보기술(IT)기업이 강력한 비판과 함께 지역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압박했다. 법안은 결국 수정됐다. 기업이 바람직한 제도를 이끈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환경, 노동, 사회 이슈와 기업의 성장이 서로 상충되는 게 아니며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기업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을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재편성하고 새롭게 무장한 기업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지구상에 산재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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