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흉가 체험 유튜버가 폴리스라인이 쳐진 '실로암의 집'에 들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유튜버 A 씨는 최근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다가 무슨 짓을 한 거야'라는 제목의 흉가 체험 영상을 게재했다.
A 씨가 흉가 체험지로 선택한 곳은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실로암의 집'이다. 이곳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됐지만 수용시설처럼 운용됐다는 의혹을 받는 형제복지원 재단이 운영했던 마지막 시설이다.
깊은 밤 실로암의 집을 찾은 A 씨는 "어떤 BJ 분이 뭔지 모르고 왔는데 기자를 만났다고 한다. 여기가 제2의 형제복지원, 영화 '도가니'라는 거다. 지금 조사 중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복지시설은 국가에서 보조금을 준다. 운영할 때 목적은 국가보조금이다. 집 없는 사람, 노인 등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무조건 집어 넣고 환자 취급을 했다. 사람이 많을수록 보조금이 늘어난다. 자신의 이익으로 챙긴 곳이다. 위험한 곳은 맞다. 요양 복지시설이라고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다"라고 주장했다.
A 씨는 이 영상에 '형제복지원-아이들 영정사진'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영상에 기재했다. 텅 빈 시설 내부는 떠난 이들의 급박함이 연상될 정도로 정리되지 않은 채 있었다. A 씨는 시설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불들이 쌓여있는 모습과 환자들의 입소 당시 사진이 프린트된 서류를 보여줬다.
A 씨는 "여기 형제복지원이라고 쓰여있다. 여기 같은 데다. 형제복지원에서 배추를 길러서 차량으로 운송했다고 다 써 있다. 여기 아동도 있다. 아동 있을 이유가 없다. 부랑자라고 해서 끌려왔다고 적혀있다"고 했다.
또 한 서류를 본 후 "지하도에서 구걸과 노숙하여 경찰에 단속되어 형제원에 입소하고 보니 정신질환자로 별도 병동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쓰여있다. 별도 병동이 이곳이었나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렇게 (아픈) 사람들이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실로암의 집에 널려있는 서류들을 뒤지며 "여기서 고문 같은 것도 했나 보다. 신상정보가 다 나와서 다 못 보여주겠다. 나 잡혀가는 것 아니냐"며 때때로 "누구냐"고 허공을 향해 말하고 "무슨 소리가 들린다"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구석에 쌓여있는 형제복지원 책자를 꺼내며 "이 책들은 형제복지원 혹은 소속 기관을 홍보하는 책이다. 실제론 다 가짜다. 뭐 하는 곳인지 모르는 분들도 있을 거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깨끗한 길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노숙자들들 잡아다 넣은 것. 일, 고문, 성폭행 나쁜 건 다 거기서 자행되고 쥐도 잡아먹고 했다더라. 사망자 수가 500명이 넘는다고 한다"고 했다.
이 시설은 과거 무허가 종교기관을 세워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예배를 보는 공간도 있다"고 말하며 "여기 온 사람들이 돈이 뭐가 있다고 헌금을 내라고 한다. 여기 영정사진이 되게 많다"고 했다. 그러더니 고성을 지른 후 "잘못 들어온 거 같다. 아이들의 영정사진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실로암의 집에서 형제복지원과 같은 인권 유린이 발생했다는 증거나 조사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A 씨가 이곳을 형제복지원과 같은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왜곡한 데 있다.
영상 속 문서와 영정사진은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었다. 또 A 씨는 영상에서 '형제복지원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콘텐츠 섬네일엔 '형제복지원 아이들 영정사진-대체 아이들에게까지'라고 적어 이른바 '낚시'를 했다.
A 씨뿐만 아니라 서너 명의 BJ가 이 시설을 찾아 흉가 체험 콘텐츠를 제작해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무단 침입 했고, 중요한 자료 훼손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민성 부산시의회 의원은 연합뉴스에 "형제복지원이 해산되고 진실을 밝힐 기초적 자료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훼손되면 진실을 밝히려 한 노력이 수포가 될 수 있기에 출입을 엄격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보도가 나오자 A 씨는 분노하며 반박했다. 심지어 형제복지원 생존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며 녹취록도 올렸다.
A 씨는 "잠자고 일어나니 난리가 났다. 기사 봤나. 단 하나는 알고 가야 한다. 아무 관련이 없는 건물인데 형제복지원에 대한 중요한 서류들이 다 있나. 그러면 오해의 소지를 만든 거다. 건조물 침입에 대해서만 뭐라고 했으면 아무 말 안한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유리창이고 뭐고 박살이 나있고 나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BJ, 체험단이 갔다. 왜 나가지고 그럴까? 이유가 있다. 그 사람들은 형제복지원에 대해 말을 안 했다. 국가에서 되게 민감하게 생각을 한다. 내가 형제복지원에 대한 있는 사실을 이야기 한것 뿐"이라고 분개했다.
A 씨는 또 "서류 관리를 엉망으로 하고선 왜 내게 그러는가. 부산 시의원들이 논쟁 중이라고 한다. 형제복지원에 대한 재판이 있으니 기사를 쓴 것 같다"고 했다.
A 씨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라며 김모 씨의 인터뷰 녹취록도 올렸다. 김 씨는 "형제복지원 사건 생존자 중 한 명"이라고 설명하며 유튜브 A 씨 덕에 자료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사 법안이 통과됐고 진상위원회 발족이 된 상태인데도 서류들을 방치했더라. 현 정부나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찾아야 한다. A 씨가 발견을 한 거다. 개인적으로 자료를 찾게 되어 반가웠다. 이후 경찰관들이 가서 수거해 왔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타 시설(실로암의 집)에서 나온 자료를 왜곡한 거라고 하는데 자료는 형제복지원 관련 차트고 자료다. 명칭만 실로암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 모임이 몇백 명이 된다. 결국은 서류가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유튜브의 경우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일부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소재, 제목으로 콘텐츠를 업로드 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흉가 체험은 안전사고 우려와 주거 침입죄 등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한편 1975~1987년까지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이른바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며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기록됐다.
정부가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북구 형제복지원에 불법으로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학대와 폭행, 암매장, 성폭행 등 인권유린이 벌어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복지원 자체 기록에 따르면 12년간 513명이 사망했고 주검 일부는 암매장됐다.
검찰은 1987년 고(故)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업무상 횡령·특수감금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2018년 4월 위헌적인 내무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은 불법감금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사건 재조사를 권고했다. 진상조사 결과 검찰은 당시 복지원의 불법 수용과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결론 내렸고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비상상고를 결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지난 11일 재판부는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돼 무죄를 받은 고 박인근 원장의 비상상고심에서 기각 판결을 내렸다.
박 씨가 무죄 판결을 받은 근거는 비상상고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령에 의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형법 20조이어서 무죄 판결이 법을 위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단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은 신체의 자유 침해가 아닌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진실규명 작업으로 피해자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며 국가 차원의 인권침해 사건인 만큼 질실 규명과 피해 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무죄 파기로 명예 회복과 피해 보상을 기대했지만 판결 선고 직후 실망하며 법원 앞에 주저앉아 흐느끼기도 했다. 이들은 국가 차원의 과거사 정리와 보상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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