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직원들에게 정의선 회장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모았다. 사내 게시판에 실명으로 질문하는 방식이어서 직원들이 소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5일간 7700명이 참여했다.
“연봉이 해마다 줄어 사기가 떨어진다”와 같은 직설적인 질문도 많았다. 직원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질문 11개 중 8개가 성과와 보상에 관한 것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직원들이 그룹 총수에게 실명으로 거리낌없이 보상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며 “앞으로는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이 이런 변화에 발맞추지 않으면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날 “죄송하다” “책임감을 느낀다” 등의 표현까지 쓰면서 문제 해결 의지를 밝혔다. 각 계열사 CEO가 연내 성과 및 보상 관련 제도를 개선하도록 독려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뛰어난 성과를 낸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해 우수 인력을 모으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정 회장은 “인재들이 성과나 보상 측면에서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면 결국 회사의 발전이 저해될 것”이라며 “인재들이 내는 성과를 잘 찾아 보상하고, 이를 승진으로 연결해야 좋은 인재들이 회사에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재를 보호하고, 발굴하고, 북돋아주고, 키우기 위해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수평적인 소통의 중요성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조직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고, 일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며 “소통을 위해서는 많이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더가 강압적이면 조직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리더는 순발력 있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며 “이런 게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이날 정 회장의 발언을 ‘파격적’이라고 평가했다. 주요 그룹 총수가 성과 및 보상에 대해 직접 언급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워낙 민감한 문제다 보니 총수가 직접 나서기보다 노무 및 인사 담당자들이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정 회장은 보상이 부족하다는 직원들의 지적에 책임을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직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질문을 받고, 추천 수가 많은 질문 순서대로 정 회장이 답변하는 방식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직원들이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고, 총수에게 비전을 공유해달라고 주문한 것이 눈에 띄었다는 반응도 많았다.
일부 4대 그룹 계열사는 제도 개선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광모 회장이 이끄는 LG그룹은 핵심 인재가 필요한 계열사부터 보상 체계를 바꾸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인재 유치가 시급한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이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게 이뤄지도록 해 임직원의 동기 부여와 역량 향상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총수와 최고경영진이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강성 노조들의 입지가 오히려 축소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회사의 경영 상황과 향후 비전, 보상과 승진체계까지 가감 없이 직접 설명에 나서면서 노조의 협상력이 필요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젊은 세대들은 노조의 기득권에 비판적”이라며 “노조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도병욱/이선아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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