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억척 어멈>이라는 KBS 다큐멘터리의 일러스트를 그린 적 있다. 힘든 시기 가장이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당시의 인연으로 같은 피디와 2017년 ‘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또 한번 함께 하게 됐다. 여기서 △전쟁을 겪은 할머니 △장교 할머니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여러 군상을 그렸다. 이처럼 해당 문제에 대해 조금씩 상기해오던 중 2019년에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식으로 작업에 돌입했다. 그해 상반기 ‘많이 알릴수록 좋은 일이니까’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지원한 네이버 창작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돼 3개월 정기 연재를 하게 됐다. 이후에도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자체적으로 작품을 올려오다가 그 그림들을 엮어 책을 만들었다.”
“하버드 교수의 망언 등 논란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 자체가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닐까. 분명 문제적 발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이슈화되는 것이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아쉽다. 이 주제가 시끄럽고 골치 아픈 문제라는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외면하게 만드는 그에게 우리가 필요 이상의 관심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 모르겠다. 다만 한 단어로 정의 내린다면 ‘시작’이라고 하고 싶다.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것은 분명하다. 기억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도 없지만 “기억합니다”라고 소리를 내주는 사람들이 늘수록 ‘잘’ 기억하는 사람 또한 많아진다. 이 책에서의 ‘기억’은 그런 의미로 쓰였다.”
“원래는 그림의 순서가 반대다. 외부에서 바라보기에는 푸르기만 한 하늘이지만 할머니의 눈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심상적 의미를 담았다. 같은 풍경을 봐도 감정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이마다 자유롭게 해석했으면 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옥수역 근처에서 창밖의 노을을 감상하시는 할머니와 자꾸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순간, 할머니가 몇 분 남지 않았다는 라디오 내용이 떠오르며 오늘 우리와 함께 지하철에 타고 계시던 할머니가 내일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라는 제목도 멀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 봐줬으면 하는 의도에서 지었다.”
“공연 작업으로 뉴욕을 찾은 적이 있다. 화려한 거리 위, 각종 전자제품과 뮤지컬 광고로 반짝이는 커다란 전광판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린 이후 ‘하이채드’라는 미국인 유튜버가 광고판에 할머니와 독도의 이야기를 실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수많은 할머니들의 활동 발자취가 있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할머니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며 새삼 할머니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픈 기억을 되짚어 증언하고 잘못된 주장을 펼치는 이들에게 조언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강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피해자이지만, 피해자인 모습만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한 영웅으로서 그리고 싶었다.”
“어느 할머니는 뉴스에서 ‘생존해 계시는 할머니들이 몇 명’이라는 식의 소식이 흘러나오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조바심을 내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아쉬운 현실을 강조하는 것이 착잡했다. 동시에 누군가를 위한 일이 의도치 않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러한 부분도 할머니들의 시선에서 책을 그리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출판 직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식의 표현을 모두 걷어냈다. 진정 당사자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에 가장 집중했다.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할머니들의 마음을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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