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만 보면 국민연금 덩치는 세계 공적연금 중 3위에 이를 만큼 커졌다. 법으로 가입을 강제하는 데다 선심성 정책으로 자격요건도 잇따라 완화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용내용이나 장기적 관점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국민연금의 취약성에 대해선 이미 무수한 경고가 나왔다. 가장 최근의 정부 전망은 2041년부터 적자, 2056년에는 적립금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초저출산과 유례없는 고령화를 감안하면 이 시기도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더구나 잠재성장력이 고꾸라지는 판에 코로나 쇼크까지 겹쳐 장기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되고 있다. 가입자가 줄어드는 반면 연금수령자는 급증하고, 운용수익 제고에도 한계가 있는 ‘3중고(苦)’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공약으로 내걸었던 국민연금 개혁을 방기했다. 법에 정해진 ‘5년마다 재정추계’ 시기에 맞춰 2018년 연금 개혁이 시도되기는 했다. 하지만 ‘더 내고 덜 받기’라는 근본 해법을 국민에게 설득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연금보험료를 더 걷기가 부담스러웠다면 운용 역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안이라도 제시했어야 했다. 이후 정부는 엉뚱하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이 문제를 넘겨버렸다. 결국 네 가지 복수안을 국회로 떠넘긴 뒤 지금껏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책임은 법에 정해진 재정추계 시기에 장기지속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에 있다. 직무유기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책임 문제에선 국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얼떨결에 떠안은 20대 국회보다 거대 여당이 독주하는 지금의 21대 국회가 더 문제다. 정부도 여당도 관심사는 ‘퍼주기’뿐이고, 정작 꼭 해야 할 일은 회피하고 있다. 개혁을 늦출수록 국민연금 정상화는 더욱 힘들어진다. ‘폭탄돌리기’가 가능하지도 않다. 기성세대만 덕보는 국민연금 실상을 파악한 20~30대가 ‘가입 거부, 납부 거부’ 운동이라도 벌이면 어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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