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에서 이긴 야마구치현은 이토 히로부미 등 일본 총리를 숱하게 배출하며 일본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했다. 2019년 총리였던 아베 신조도 야마구치현을 지역구로 뒀었다. 야마구치현에 당한 역사를 공유했으니 ‘우린 같은 편’이라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었다. 야마구치현과 후쿠시마현은 지금도 서로 혼인을 꺼릴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다. 아베 총리가 후쿠시마 선거 유세 때 보신전쟁 당시 야마구치현의 가혹한 처사를 대신 사과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한·일 관계가 최악이던 시기에 국회의원이 상대편 기자단을 ‘같은 편’이라며 반기는 건 의외였다.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군국주의와 패전,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를 경험한 결과 일본은 사상적·사회적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백 년 동안 봉건 영주제를 유지했던 탓에 지역색도 강하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1월 말에는 자타공인 ‘일본통’으로 불리는 강창일 전 의원을 주일 대사로 임명했다. 지난 10일 첫 특파원 간담회에서 강 대사는 우리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 카드로 자신을 보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강제징용 피해 및 위안부 문제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일부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할머니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와 일본 전범기업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손해배상금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대신 내주는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 방안의 최대 어려움은 여전히 일본에 강경한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한국 정부와 강 대사가 일본의 다양성을 잘 설명해 우리 국민을 납득시켰으면 한다.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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