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진표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간 사실상의 양자대결로 확정됐다. 보수 표심 결집에 힘입은 오 후보가 2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꺾고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됐다. 오 후보는 “분노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선택해준 마음을 받들겠다”고 정권 심판 의지를 강조했다. 여론조사상 뒤처져 있는 박 후보는 오 후보의 처가 땅 특혜 의혹을 부각하는 동시에 재난지원금 공약을 앞세워 막판 여론전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2011년 서울시장 자리에서 사퇴했던 오 후보가 10년 만에 시장직에 재도전하게 됐다. 그는 재선 시장 시절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추진한 뒤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 것을 회상하며 “지난 10년을 무거운 심정으로 살았다”며 “스스로 담금질하면서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해왔다”고 했다. 오 후보는 기자회견 도중 감정이 복받친 듯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야권 재편 과정에서 구심력이 될 수 있는 제1야당 소속 오 후보에게 막판 보수 표심이 쏠렸다는 분석이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추진하기 위해선 제3지대 후보인 안 대표보다는 국민의힘 소속 오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야권 지지자들의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오 후보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여러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에게 밀렸지만 최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등으로 정권 심판론이 부각되면서 지지율이 오름세를 탔다.
여기에 TV토론 등을 거치며 시정 경험을 갖춘 오 후보의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민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이 결과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민주당 입장에선 중도층을 포섭하고 있는 안 대표보단 ‘무상급식 원죄’가 있는 오 후보가 더 편한 상대였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안 대표가 단일 후보가 됐다면 야권 재편 흐름이 본격화하면서 장외에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기대감이 서울시장 선거에 투영될 수도 있었는데 이 가능성이 차단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당장 오 후보의 시장 사퇴 경력을 언급하면서 공세에 나서고 있다. 오 후보를 “실패한 시장” “거짓말쟁이” “MB(이명박) 아바타”라고 공격했다. 여론조사 가상대결에서 박 후보는 오 후보에게 밀리고 있지만 아직 지지 후보를 선택하지 못한 무당층이 적지 않고 민주당이 조직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만큼 투표일까지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서울 구청장 25명 중 24명, 시의원 109명 중 10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박 후보가 서울시민 모두에게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주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여당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금지원책 역시 막판 지지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민주당이 서울 내곡동의 오 후보 처가 땅 특혜 의혹을 선거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김태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MB 아바타다운 거짓말 정치”라며 “(내곡동 의혹 관련) 오 후보의 거짓말을 입증할 증거 자료는 차고도 넘친다”고 말했다. 오 후보 측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내곡동 보금자리 지구를 선정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지만, 당시 오 후보가 서울시정을 이끌고 있었다는 점이 부담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의혹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를 내밀 수 있느냐가 향후 선거 결과를 가를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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