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운의 작년 봄은 잔인했다. 지난해 3월, 4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지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쓸쓸하게 전시를 끝내고 작업실이 있는 전남 해남 이마도(임하도)에서 1주일 동안 술만 마셨다.
대파가 그에게 온 건 그때였다. 느지막이 술에서 깨 자전거를 타러 나온 길, 작업실 앞에 있던 파밭이 눈에 들어왔다. 해남에 작업실을 연 지 반년이 됐지만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존재였다. 단단하게 뻗은 파는 싱싱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핏줄이 생생하게 비칠 정도로 생명력이 대단했어요. 커다란 꽃까지 피어 있었죠. 온몸이 떨릴 정도로 흥분되고 에너지가 샘솟았습니다.”
늦여름까지 내내 파를 그렸다. 그의 붓을 거치면서 파는 단단하게 대를 뻗은 나무가 됐다. 파꽃, 무꽃에 까치가 찾아들면서 ‘화조도’ 연작이 됐다.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는 사대부를 위한 유희였죠. 저는 파꽃, 무꽃, 까치 등으로 대중을 위한 화조도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파를 시작으로 주변의 자연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수십 년 집을 둘러싸고 있던 주목(朱木), 동백꽃 더미,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 등을 이제야 알아차리게 됐어요. 팬데믹을 겪고서야 자연의 소중함을 알게 된 간사한 인간을 묵묵히 지켜주는 자연을 그리며 저 자신이 치유되는 기분이었죠.”
이번에는 한지를 이용한 실험도 선보였다. 해남에 머물며 접하게 된 전주 한지에 아크릴로 작업했다. 물감을 띄워 빛을 반사하는 캔버스와 달리 색을 머금고 묵직한 힘을 전하는 한지는 자연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담아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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