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역 물동량의 13%를 담당하는 이집트 수에즈운하가 이틀째 마비 상태다. 에펠탑 높이보다 길이가 더 긴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수로를 가로지른 상태에서 좌초돼 항로가 꽉 막혔다. 첫날 예인 작업이 모두 실패하면서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나오고 있다.
24일(현지시간)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수에즈운하를 막아버린 '에버기븐'호 예인 시도가 이날 모두 실패했다. 수에즈 운하 당국은 "이집트 시간 기준 25일 오전까지 선박 인양 작업을 모두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좌초된 선박이 너무 크고 무거운 탓이다. 에버기븐호는 길이 400m, 너비 59m 규모다. 블룸버그통신은 "에버기븐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선 중 하나"라며 "선박이 올라앉은 모래제방에서 모래를 파내기 위해 접근한 굴착기가 어린애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라고 보도했다.
최근 해운수요 폭증에 에버기븐호 적재량이 거의 꽉 찬 것도 이유다. 에버기븐호는 20피트 컨테이너를 2만2000개 실을 수 있는 대형 선박이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드리스트의 리처드 미드 에디터는 "최근 해운 수요 때문에 모든 선박이 적재량을 거의 100% 채우고 있다"며 "이때문에 배가 그만큼 무거워 예인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가 단순히 모래제방 위에 좌초된게 아니라 운하 좁은 구간을 거의 가로질러 있다는 점도 예인을 어렵게 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선박 예인·인양 전문기업 SMIT살비지는 "에버기븐호는 운하 양쪽 벽을 두고 거의 수직으로 길을 막고 있다"며 "이때문에 선체 양쪽 끝에 줄을 걸어 단순히 견인하듯 배를 옮기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각 기업은 일단 굴착기 등을 동원해 배 주변 모래 제방을 파헤칠 계획이다. 이래도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배 하단 밸러스트 탱크에 담긴 평형수(배의 중심을 잡기 위해 실은 물)를 대거 빼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에버기븐호의 무게를 가볍게 해 선체를 물에 띄우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평형수를 비롯해 연료까지 상당량 빼고, 컨테이너 일부도 옮겨야 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중장비를 동원하거나 헬리콥터가 여러번 오가는 식으로 에버기븐호에 실린 컨테이너를 하나씩 옮겨야 한다는 얘기다. 모두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작업이다.
미드 편집장은 "에버기븐호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까지 해야 할 경우 수 주간이 더 걸릴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기존에 발이 묶인 일부 선박은 수에즈운하 운항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희망봉 일대를 둘러 항해하는게 그나마 더 나은지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우회 항로는 운항에 약 일주일이 더 걸린다.
해운 전문가들은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전문 정보기업 JOC그룹의 그렉 노울러 에디터는 "수에즈운하가 2~3일만 막혀도 영국과 유럽 내륙 전역에 대한 화물 운송이 지연된다"며 "최근 해운 물류난이 심해지고 있던 와중에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덴마크 씨인텔리전스의 닐스 마드센 부사장은 "에버기븐이 이틀간 수에즈운하를 막은 것만해도 이미 상당히 해운 물동량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이 3~5일만 더 가면 매우 심각한 세계적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에즈운하는 매일 세계 컨테이너 선적량의 약 30%가 오간다. 원유 등 연료에서 커피, 면화, 전자제품 등 각종 재화가 운반되는 통로다. 이번 사태로 이틀간 선박 100척 가량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에버기븐호 북쪽과 남쪽으로는 선박 최소 30척이 아예 대기 상태고, 운하 북쪽과 남쪽 출입구 주변에서 대기 중인 배도 수십척이라고 보도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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