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만큼은 심상치 않다"…'3중 악재' 닥친 삼성전자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1-03-27 16:12   수정 2021-04-26 00:02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매출 기준) 인텔의 팻 겔싱어 대표(CEO)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미래 사업 전략인 'IDM(종합반도체기업) 2.0'을 발표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고객사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것) 사업 진출 선언이 주목을 받았다. 인텔은 올해 200억달러(22조6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주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짓기로 했다.

이날 겔싱어대표(CEO)는 “반도체 생산의 아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본국 생산시설을 확충할 것”이란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전략무기’로 불리는 반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텔을 앞세워 미국 정부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자국 반도체 제조업 육성 정책과 이에 따른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진출은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를 목표로 하는 삼성전자에 '득보단 실이 많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인텔, "파운드리업체와 경쟁하며 협력할 것"
겔싱어가 약 59분 간 진행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았지만 삼성전자엔 부정적인 내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인텔의 외부 파운드리 활용 관련 언급이다.

인텔은 지금까지 주력제품인 CPU(중앙처리장치) 등 핵심 칩 대부분을 '자체생산'했다. 하지만 "공정기술 수준이 TSMC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보다 떨어진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해 하반기 "일부 물량을 외부 파운드리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겔싱어는 이날 △자사 반도체 생산 △고객사 제품을 만들어주는 '파운드리'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TSMC 같은 외부 파운드리에 일부 자사 제품을 맡기는 전략을 공개했다. 잘하는 것은 자체적으로 해결하겠지만 부족한 부분은 외부 업체에 맡겨 제품 성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겔싱어는 'co-op-petition'(협력과 경쟁의 합성어)이라고 불렀다. 그는 "인텔은 고객으로서 그들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갖겠지만 어떤 경우엔 경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력제품인 CPU 외주는 대만 TSMC"
관심은 인텔이 간판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CPU 외주 생산 물량을 TSMC와 삼성전자 중 어디에 맡기느냐였다. 겔싱어는 이날 명확하게 답을 제시했다. 대부분의 CPU는 인텔이 자체생산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10nm 공정을 차질없이 개발하고 2023년엔 7nm 공정에서 CPU를 생산할 것임을 확실히했다. 그리고 'TSMC'라는 이름이 겔싱어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2023 로드맵을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TSMC와의 협업을 통해 최고의 CPU 제품을 고객과 데이터센터 고객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For our 2023 roadmap, we will also leverage our relationship with TSMC to deliver additional leadership CPU products for our client and data center customers)


물론 프레젠테이션 이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TSMC에 우리 제품의 일부를 맡길 계획"이라고 밝히기도했다.(we're going to use Samsung and TSMC for some of our products.) 하지만 이때는 어떤 제품을 맡길 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3중 악재' 마주한 삼성전자
겔싱어의 발언을 종합할 때 CPU 외주 생산은 TSMC가 가져가는 게 확실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인텔이 삼성전자보다 TSMC를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건 ‘순수 파운드리업체’라는 이유가 큰 것으로 보인다. D램, 낸드플래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자사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동시에 파운드리사업도 하는 삼성전자와 달리 TSMC는 35년간 파운드리 한 우물만 팠다. 삼성전자와 협업 관계를 이어오면서도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는 인텔 입장에선 삼성전자에 CPU 등 핵심 제품의 설계가 노출되는 것을 꺼렸을 것이란 분석이다.

인텔의 파운드리 진출, TSMC와 인텔의 밀월, 본격화되는 미국의 반도체 패권 확보 시도까지 '3중 악재'가 삼성전자를 덮치고 있는 모습이다. 대다수 반도체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기로에 서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냐"는 얘기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심상치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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